여가로서의 게임, 노동으로서의 게임, 상품으로서의 게임: 게임 읽기의 혼란과 비판적 개입

  게이머들 사이에서 노가다 게임이라는 비난의 표현은 이제는 상투적일 뿐이다. 하지만 게임에 관한 진정으로 상투적인 인식을 상기해보자면 이는 다소 어색하게 들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게임을 즐기는 일은 흔히 취미 혹은 여가 활동으로 여겨지고 이는 특히 무엇보다도 노동과는 전혀 상반되는 활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하게도 노동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과도한 노동, 속된 말로 노가다를 요구한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게이머들의 경험과 비판적 통찰에 맞장구라도 치듯 흔히 인지자본주의론자들로 분류되는 특정한 경향의 지식인들은 동시대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스케치를 그리며 노동(력)이 되어버린 게임에 관해 분석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게임 플레이는 실제로 노동이자 노동력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가다 게임이라는 비난은 단순히 재미없고 짜증나는 게임에 대한 비유가 아닌 셈이다. 그렇지만 이는 억견에 가깝지는 않을까. 보다 안전하게 이야기하자면 최소한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게임 플레이를 과중한 노동과도 같이 느끼고 있다. 그리고 유희 혹은 노동으로서의 게임의 이중성은 현재의 노동 담론에서 징후적인 것이다. 하지만 보다 필요한 일은 ‘게임 플레이’가 노동이나 아니냐 보다도 ‘게임’ 자체를 상품 세계에 놓인 것으로서 분석하는 일이지 않을까. 어쨌거나 일단 플레이어들이 게임 플레이를 노동처럼 느끼고 있다면, 이같은 현상의 참뜻은 무엇일까?

 

재미라는 고리타분한 화두

 

  우선 게임 플레이의 어떤 요소가 그토록 플레이어에게 노동과 같이 느껴지도록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흔히 노가다겜이라는 비난은 게임의 어떤 요소를 가리키는 걸까? 그러한 게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우선 반복적인 플레이를 강제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 노가다라 불리우는 게임 플레이 유형에는 또 몇 가지의 분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레벨업 노가다‘와 ’아이템 노가다’를 꼽을 수 있다. ‘레벨업 노가다‘란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질리도록 사냥을 반복하거나 퀘스트를 처리하며 캐릭터의 레벨을 키우는 일을 가리킨다. 넥슨의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는 시스템상 최종 레벨이 200이 넘는데, 이에 가깝게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서는 특정 레벨 구간마다 효율이 좋은 일명 명당 사냥터에서 하루 몇 시간이고 그 제한된 맵 안에서 그저 버튼 몇 개를 번갈아 누르는 일에 불과한 스킬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해가며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일을 감내해야 한다. ’아이템 노가다’ 또한 마찬가지로 게임 내에서 필요한 장비 및 소비 아이템의 구비를 위해서 행하는 일련의 반복적인 플레이 과정을 일컫는다. 하지만 게임의 노가다화, 게임 플레이가 노동으로 여겨질 만큼이나 플레이어의 과도한 반복 작업을 요구하는 것은 또 어째서 문제가 되는 걸까?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이유를 떠올리자면 바로 그런 노가다로서의 단순한 반복 행위 작업이 그다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노가다 게임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불평이다.

 

  게임은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노가다로서의 단순한 반복 행위 작업이 그다지 재미가 없기 때문에 노가다 게임은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게이머들이 비슷한 불평을 던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러한 노가다 게임을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으며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여드름 짜는 영상도 보기엔 역겨운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된다지 않은가. 비슷하게도 이는 노가다적인 반복 행위 작업이 일반적으로 지루하고 구리다고 불평 되는 것과 달리 그 이면에는 나름 즐길만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노가다 작업은 게임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무엇 때문에 게임 디자인에서 노가다적 요소는 이토록 빈번히 모습을 나타내는 것일까. 게임에서의 노가다 작업은 수용자 경험의 측면에서 그가 이후 해당의 노가다 작업을 통해 달성하게 되는 목표의 성취감과 결과물(게임 내 아이템 및 재화, 경험치, 레벨 등)의 만족감과 쾌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게임에서 특정한 캐릭터의 육성과 성장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즐거움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노가다 작업은 게임에서 일정 부분 필수가 되는 걸지도 모른다.

 

  게임 개발(생산)의 측면에서 노가다 작업은 디자인되고 도입되는 것이다. 이는 게임을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개발 노동력의 절감을 위해서 도입되곤 한다. 흥미롭게도 게임 생산을 위한 노동력의 부족이 게임 플레이어의 노동으로 상쇄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생산된 (노가다) 게임의 플레이 타임은 그만큼 증대된다. 즉 노가다 요소의 도입은 상품으로서의 게임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기능 또한 한다. 이는 흔히 게임의 컨텐츠가 질적으로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을 단순히 반복적으로 특정한 컨텐츠의 양을 늘림으로써, 즉 게임의 결함을 완충하는 일로 여겨지며 플레이어들로부터 그다지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없다. (물론 이는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드시 게임에 노가다적인 반복 행위 작업의 도입이 게임 플레이를 단조롭고 재미없게 만들지만은 않는다. 이를테면 이미 게임 컨텐츠의 충분한 질적 다양성이 확보된 다음에도 게임 플레이의 반복은 오히려 게이머들로부터 요청되기도 한다. 충분히 질적인 게임은 그것의 놀라운 디테일이 오직 반복 플레이를 통해서만 발견되고 체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복의 도입은 흔히 생각되는 것처럼 게임 컨텐츠의 부실함을 숨기고 개발력을 절감하는 일에서뿐만 아니라, 오히려 게임적 경험의 고도로 아름다운 디테일과 경험을 위해서도 요구된다.

 

  흔히 뉴게임+로 부르는 게임 매체만의 독특한 시스템은 이같은 반복 작업의 미학이 멋지게 형식화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뉴게임+란 흔히 게임을 한번 클리어하는 것을 조건으로 열리게 되는데, 말 그대로 게임을 클리어 한 다음에 한 회차 더 플레이하는 기능이다. 이는 단순히 좋아하는 영화나 책을 다시 보는 일과는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데, 왜냐하면 플레이어는 이전 회차에서 축적한, 소위 우리가 컨트롤이라고 부르곤 하는 게임에 대한 적응감을 가지고서 플레이를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무형의 ‘컨트롤’ 뿐만 아니라 이같은 실력의 물화일 터인 아이템, 장비 및 캐릭터의 능력치까지도 이전 회차에서 수집한 상태로 뉴-게임이 진행되기도 한다. 첫 플레이에서 우리는 맨몸의 캐릭터만으로 시작하여 끝내 게임을 완주할 수 있었다. 뉴게임+는 마치 전생물에서처럼 이전의 플레이에서 겪었던 경험을 소지한 채 다시 반복되는 세계를 마주한다. 이같은 뉴게임+는 단순히 플레이어의 감상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작동하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독특한 게임 매체적 특징에 따라서 실제로 동선, (물리적으로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발견하지도 ‘진입’하지도 못했던) 장소, 심지어는 (선택 분기로서 주어졌기 때문에 이전에는 읽을 수 없었던) 새로운 서사와 레벨디자인까지 이전 회차와는 전혀 다른 작품과 경험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게임이 놓여져 있는 사회적 맥락에서 게임에서의 노가다를 둘러싼 문제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우선 게임은 우리 사회에서 전적으로 취미, 여가 활동으로 여겨지곤 한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게임은 우리가 정해진 노동 일과 및 학업과 같은 고된 시간을 마친 뒤에 소진된 몸의 휴식을 취하기 위한 하나의 여가 활동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노가다화된 게임은 우리들을 오히려 더욱 피로하게 만들고 만다. 일을 마치고 난 뒤에 쉬기 위해서 켠 게임이 되려 또 다른 강도 높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자유주의라 불리우는 독특한 담론은 현재의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의 특징들을 제시한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진단 중의 하나는 오늘날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일상 영역 전반으로까지 착취의 영역이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노가다적) 게임은 이같은 신자유주의의 기수와도 같은 매체가 되어 있는 것일까?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는 노가다(노동)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단순히 사회학적인 담론이 아니라 바로 특정한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노동 또한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논리 안에서 봐야 마땅할 것이다. 자본주의 안에서 인간의 행위가 노동이 되려면 그것은 우선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조차도 노동력 상품으로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이어서 인간의 생산물이 상품이 될 수 있으려면 그것은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단순히 힘들고 반복적이며 고된 행위를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헬스장은 우리 시대의 가장 최흉의 노동 현장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상품으로서의 게임을 둘러싼 행위들이 어떤 측면에서 노동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노동 혹은 노동력으로 부르기는 곤란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새로운 상품 세계로서의 게임과 게임의 제품 형태 분석

 

  게임 플레이, 우선 이것은 게임이라는 상품을 구매하여 이용하는 것이므로 영화표를 사서 보거나, 책을 구매하여 읽는 것처럼 일종의 소비-여가 활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게임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 독특한 형태의 제품으로서 이것을 이용하는 과정 안에서 제품 자체의 형태가 변형되고, 또 이로부터 파생되는 또 다른 생산물을 낳기도 한다. 흔히 아이템이라고 불리우는 게임 속 가상의 기능물이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은 그 안의 가상세계 속에서 자체적인 통화 시스템까지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것들은 현실에서 거래되지 않을 경우 결코 잠재적으로라도 실제 상품(아이템), 화폐로 기능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게임 플레이 행위 또한 결코 잠재적으로라도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이 되지 않는다. 이는 그저 시뮬레이션으로 남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만약 현실과 교환되는 경우에서야 게임의 아이템과 화폐는 자본의 순환 속으로 들어서게 되고, 게임 플레이는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되어 잠재적으로 노동력이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자체 소비재로서의 단일한 게임이라는 제품의 성격은 전혀 다르게 된다. 우리는 이같은 전환을 가능케 하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갖는 몇 가지의 제품 형태들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실제 현실의 화폐를 통해 게임 내 아이템 및 재화를 구매하는 일은 더이상 우리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흔히 ‘소액결제 시스템’으로 불리우는 최근의 지배적인 게임 제품의 형태는 우리들로 하여금 게임 속 가상의 기능물을 현실의 화폐를 주고서 사는 일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도록 하였다. 소액결제 시스템이란 게임의 다운로드나 이용권(플레이) 자체의 판매와는 상관없이 게임 속에서 특정한 아이템이나 재화 혹은 경험치 부스트와 같은 것까지도, 해당의 게임 내 기능(물)을 판매하여 수익을 내는 형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보통 소액결제 시스템을 채택한 게임은 대부분 게임의 다운로드나 이용은 무료로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 소액결제 시스템은 다른 어떤 게임 제품 형태 보다도 높은 수익성을 증명한 덕택에 최근 대부분의 게임 제품이 이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소액결제 시스템은 비교적 최근 발명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전까지 게임 제품의 형태는 주로 CD 디스크를 포함한 단일한 패키지이거나, 그다음에는 정액제 이용권과 같은 형태로 판매되었다. (이외에도 동전을 투입하여 몇 회의 플레이 타임 단위를 판매하는 등의 여러 가지의 게임 판매 형태가 있으나 여기선 중요하진 않으므로 자세히 다루진 않는다.) 이 대표적인 두 가지의 게임 제품 형태 및 판매 방식에 비해서 소액결제 시스템은 현실의 화폐를 더욱더 많은 양을, 더욱 빈번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더욱 구체적인 방식으로 가상의 기능물들로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굉장히 독특하고 특별한 형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뒤에서 우리가 살펴보게 될 참으로 독특한 게임 제품 형태에 비하면 여전히 평범한 제품인 축에 속한다. 패키지 판매이거나 정액제이거나 소액결제이거나 게임 자체, 혹은 게임으로부터 얻게 되는 수익은 여전히 게임사 및 유통사와 같은 규정된 판매자에게로 수취 된다, 게임으로부터 생겨난 수익은 예외 없이 규정된 판매자로 수취 된다. 그러나 게임이라는 제품이 오늘날 노동과 여가, 나아가 게임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둘러싼 일련의 문제들 속에서 독특해지는 지점은 따로 있다. 바로 게임 내 재화 및 아이템이 현실로 판매될 때이다. 마치 가상의 게임 아이템이 실제로 가치를 갖는 듯이 말이다.

 

  앞서 가볍게 살펴본 세 가지의 게임 제품 형태는 판매와 동시에 소비된다. 달리 말해 게임 제품은 여타의 소비재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판매된 이후에는 자본의 순환에서 안녕한다. 그러나 게임 내의 재화나 아이템이 현실의 화폐로 구매되기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상의 장벽을 안에서 바깥으로 뚫고서 현실로 판매될 경우에라면 이는 마치 게임 상품이 판매되어 소비된 이후에도 여전히 자본의 순환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제부터 게임은 마치 기계처럼 노동력을 투입하여 가치를 생산하고 또 그렇게 생산된 생산물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데, 이로부터 생산된 생산물(게임 내 아이템 및 재화, 심지어는 계정까지)의 시장에서의 가격은 최초 해당 게임을 구매하거나 이용하면서 들인 가격을 훨씬 초과할 수도 있게 된다. 여기서 게임은 더이상 소비된 상품에서 마치지 않고 직접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일종의 생산수단이 된다. 이에 따라 게임 상품을 소비하는 플레이 행위는 바로 이러한 형태 안에서만 직간접적으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잠재적으로 노동력 될 조건을 갖추고, 직접적으로는 플레이어를 시장에서의 게임을 통한 판매자로 만들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우리가 흔히 플레이어라고 부르는 게임 상품의 구매자는 단순히 소비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매한 게임으로부터 직접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게 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임 제품의 형태는 오직 게임 내 재화가 현실로 판매될 때뿐이다.

 

  게임 플레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사업의 형태는 흔히 불법적인 개인 자영업자의 모습을 띤다. 왜냐하면 오늘날 게임 내 재화를 현실로 판매하는 일이 대부분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를 바탕으로 다수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모습의 평균적인 산업 자본주의적 사업장을 조직하기는 힘들다고 추론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닌듯 싶다. 게이머들 사이에선 거의 상식처럼 알려져 있는, 우리가 흔히 ‘작업장’, ‘매크로’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러한 조직된 사업장 형태를 일컫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유령과 같은 이야기처럼 게임 커뮤니티 사이를 떠돌 뿐이다. 그 누구도 작업장과 매크로의 실체를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작업장은 중국과 같은 저임금노동 국가에서 오직 게임을 실행하는 컴퓨터만이 줄지어 놓인 대규모 공장 안에서 고용된 노동자들이 온종일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를 통해 게임 내 아이템 및 재화만을 생산하는 사업장이다. 거기서 생산된 게임의 아이템과 재화는 ‘아이템매니아’와 같은 불법적인 아이템 거래소 시장에서 유통된다.*

 

  게임 플레이를 노동으로 만드는 측면에서 게임의 형태는 크게 온라인과 싱글로 구분된다. 왜냐하면 게임 내 재화가 현실로 판매되는 경우는 독특한 형태에 해당하고 이는 온라인 게임이 아닌 이상에서야 거의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온라인 게임이라면 게임 내 재화가 현실로 판매되는 현상은 거의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것의 충분한 조건이 된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온라인 게임이 아닌 경우에, 다시 말해 게임 내 재화가 현실로 판매되지 않는 경우에서의 게임 플레이는 그것이 얼마나 힘들거나 반복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결코 노동(력)과는 관련이 없다고, 또한 그 게임 내 재화 또한 결코 상품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이더라도 게임 내 재화가 현실로 판매되지 않는 경우 또한 흔하다. 이는 역시나 게임의 장르적 형태와 관련되는데, 흔히 게임 내 재화가 현실로 판매되는 현상은 대부분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라 일컫는 온라인 게임 장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곤 한다. 물론 오늘날 MMO-RPG에 속하는 게임들 사이의 다양성 덕택에 더이상 이 장르의 공통적인 특징을 정의하는 일은 어렵고 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한국에서 현재 가장 많이 플레이되고 있는 MMO-RPG 장르인 ‘메이플스토리’나 ‘리니지’, ‘아이온’과 같은 게임들은 게임 내 아이템을 관리하는 구조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아이템은 각 개인의 캐릭터가 사적으로 소지할 수 있으며 이는 (몇몇의 예외적인 거래 금지 조항이 붙어 있는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다른 플레이어 간에 교환될 수 있다. 물론 게임 내 가상 아이템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것이 특정한 게임으로부터 연장된 컨텐츠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아이템에 대한 저작권자로서의 실제 소유권자는 게임의 개발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게임 내에서 각 개인의 캐릭터가 아이템을 소지하고 이를 거래할 수 있는 게임의 구조로부터 생겨나는 특정한 지각의 경험은 현실로까지 이어지는 불법적인 아이템 거래소 시장이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장비 헬멧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화폐 메소

 

  게임 내 재화가 현실로 판매될 수 있으려면 MMO-RPG 장르에서처럼 게임 내 아이템은 플레이 중에 플레이어의 캐릭터에게 사적으로 소지 될 수 있고 또 플레이어간 거래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배틀그라운드’나, ‘오버워치’, ‘스타크래프트’와 같이 한 판 개념으로 작동하는 게임은(흔히 FPS, RTS 장르 등) 그 안에서 어떤 아이템을 획득하건 오직 한 판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한 판의 게임이 끝나면 그 아이템은 전부 사라지고 소지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의 시장에서 교환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획득하는 플레이어의 플레이 행위 또한 마찬가지 잠재적으로라도 노동력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틀그라운드에서 최고의 장비 아이템 중 하나로 여겨지는 레벨3 뚝배기는 같은 가상의 게임 아이템 임에도 게임 내 아이템이 교환되는 시장과 작업장이 형성되어 있는 ‘메이플스토리’의 10메소 (메소는 메이플스토리의 자체적인 화폐단위이다. 10메소는 게임 내에서 구매 가능한 가장 저렴한 아이템도 구매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금액이다.)보다도 가치가 없다.

 

  우리는 이렇듯 게임 플레이가 노동이 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자본주의의 구조에 따른 논리 안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게임 내 재화가 현실로 판매되거나 마는 것과는 상관없이 게임 플레이는 그 자체로 노동(력)이고 마찬가지로 헬스 역시나 노동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특히나 오늘날 인지자본주의론자들로 불리우는 특정한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가정하고 공유하는 이들은 게임 플레이 전반을 앞서 살펴본 시장의 교환관계와는 하등 상관없이 노동인 것으로 주장하곤 한다. ‘네그리’와 ‘하트’를 중심으로 하는 인지자본주의론자들 혹은 이탈리아의 자율주의 경향의 사상가들은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과거 산업 자본주의와는 달리 ‘비물질 노동’과 ‘비물질 상품’의 생산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기의 자본주의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의 새로운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주요한 생산물들은 ‘정보‘, ’지식‘, ’네트워크‘, ’서비스‘와 같은 비물질 상품들이다. 그러한 비물질 상품들은 마찬가지로 비물질 노동으로부터 생산되는데, 비물질 노동은 바로 그 비물질적인 특징으로 인해 과거와 같은 (그들이 말하길 산업 자본주의 시기에서의) 고용 관계 안에서 투여되는 노동력으로부터 가치가 생산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진단으로 나타나는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희미해진다는 주장은 인지자본주의론자들에게는 단순한 비유가 아닌 그 자체 사실로써 여겨진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현실로 판매되지 않는 게임 아이템을 생산하는 게임 플레이, 현실에 아이템 거래소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게임의 플레이, 사업으로 조직될 수 없는 게임 플레이 또한 여지없이 노동이 된다. 특히나 ‘배틀그라운드‘나 ’카운터스트라이크’, ‘서든어택‘과 같은 FPS 장르의 게임들은 그들에게 중요한 분석의 대상이다. FPS 장르의 게임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중요한 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군수 산업에 기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FPS 장르의 게임을 통해서 특수한 전쟁의 경험을 미리 훈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FPS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군수 산업의 가치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생산한다. 그러나 여기서 생산되는 것은 상품이라기보다는 주체성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체성의 생산 또한 (비물질) 노동의 연장으로 본다. 인지자본주의론에 기반하여 게임에 대한 수많은 분석 작업을 전개 중인 대표적 학자인 ’위데포드’는 이를 비물질 노동이란 개념에 한술 더 떠서 ‘놀이노동력’이란 개념으로 ‘게임플레이’ 자체를 노동으로 보는 인식을 구체화한다.** 물론 주체성과 그 담론은 상품으로 조직될 수 있다. 예컨대 짜증나는 신자유주의적 주체성을 설파하는 자기계발 담론은 서점에서 책 형태로 또 강연 상품이 되어 흔히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게임 매체에서만큼은 그러한 주체성의 생산이 상품의 형태로 조직되지는 않은 것 같다. 한 가지 더 말해두자면 게임은 충분히 매체적 측면에서 형태적으로 분석될 수 있어야 한다.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이 게임을 비물질 상품의 대표격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매체로서의 게임은 여전히 물질적이다.***

 

  FPS 장르의 게임 플레이로부터 생겨나는 주체성의 생산은 상품으로 조직되기 전까지는 전혀 노동과는 상관이 없다. 또한 흔히 한 판 단위의 플레이 형식을 취하고 있는 FPS 장르는 그 안의 아이템들 또한 상품이 되기 까다로운 조건에 있다. 하지만 이같은 구조의 게임에서도 게임 플레이는 상품이 되기도 한다. 흔히 ‘대리‘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대리’란 타인의 계정으로 게임을 플레이하여 (흔히 티어나 리그라고 부르는 혹은 레벨이 될 수도 있다.)등급을 높여주고 해당 계정을 더 좋게끔 가공해주는 일종의 서비스 상품이다. 그러나 게임 내 가상의 아이템을 거래하는 일이 게임사로부터 금지되어 있음에도 플레이들의 이해와 지각의 수준에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이루어지고 또 실제로 큰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작업장이라는 평균적인 자본주의 산업장의 형태로 조직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리’는 흔히 플레이어들로부터 비열한 행위로 여겨진다. 때문에 ‘대리’는 상품으로 조직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나는 ‘대리’가 ‘계정주 본인의 순수한 게임 플레이에 따른 정당한 게임의 경험을 훼손’한다는 생각에 있어서는 사실 현질로 자신이 직접 게임 내에서 획득하지 않은 끝내주는 장비를 착용하고서 게임 플레이를 경험하는 것이 ‘대리‘와 그렇게 큰 차이가 있나 싶다. 둘 모두 온전한 게임 플레이 경험을 훼손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소액결제 시스템의 무분별한 확장과 방치형 게임 등의 등장에 의해 우리가 온전한 게임 플레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변형되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불법적인 아이템 거래나 매크로, 작업장, 대리와 같은 게임 플레이의 상품화와 노동화를 비판할 근거 또한 약해지고 있다. 온전한 게임 플레이 경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게임이라는 제품의 생산 단계에서 나타나고 파악될 수 있는 게임의 온전한 소비 방식을 의미한다. 이 게임을 플레이함으로써 얻게 될 경험과 감상들, 예컨대 레벨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게임 내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 등의 형식은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플레이를 통해 비로소 온전히 체험되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플레이되는 게임 내 가상세계의 온전한 시간과 공간적 특성을 형성한다. 게임은 그와 같은 온전한 게임 플레이 경험을 보장하고 전달하기 위해서 플레이어 간의 아이템 거래, 대리를 금지한다. 심지어는 합법적인 게임의 제품 형태인 ‘소액결제’까지도 게임의 생산 단계에서 게임사 스스로 제한한다! ‘소액결제’를 통해 구매 가능한 아이템들은 게임 내에 시스템적으로 너무 큰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제한된다. 게임사는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소액결제로 판매되는 아이템은 게임 시스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물론 이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를 않는다.) 이유는 오직 플레이어에게 온전한 게임의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 누구도 게임의 매체 외적인 영향력을 들여 게임의 난이도를 쉽게 만들거나 게임 내의 특정한 시간적, 장소적 구간을 스킵하고 게임의 온전한 경험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겁한 짓이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장비 집행검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러한 게임 외적인 영향력을 들여 게임의 플레이 경험을 개선하는 일이 하나의 확장된 게임 플레이 자체가 되어 가고 있다. 게임의 생산 단계에서부터 게임 플레이는 당연히 현질 되어 개선될 수 있는 것으로 디자인된다. 오늘날 지배적인 게임 제품의 형태가 된 ‘소액결제’에서 더는 과거와 같이 “소액결제로 판매되는 아이템은 게임 시스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약속은 사라진다. 이제부터 ‘집행검’(NC소프트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등장하는 무기 아이템으로서 아이템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무려 차 한 대 값과 맞먹는다.)은 게임 내에서 사냥과 퀘스트를 통한 보상과 제작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법적인 아이템 거래소에서 현질로 교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된다. 이처럼 게임이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시장과 게임 플레이를 상품으로 삼는 시장은 언뜻 독립적인 것 같지만 공통적인 매체 구조를 조건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직간접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생산하는 시장의 자본가들, 대표적으로 거대 게임사는 게임 플레이가 상품이 되는 (불법적인) 시장에서 생겨나는 수익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으며 그저 눈독을 들이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은 아이템 거래소에서 생겨나는 수익까지도 빨아들이기 위해 온전한 게임 플레이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던졌던 과거의 약속을 뒤로 한 채 소액결제로 구매 가능한 도박에 가까운 가챠 상품을 막대하게 증가시키고 자동사냥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게임의 매체적 조건 자체를 생산 단계에서부터 변형하고 있다. 이렇듯 게임 플레이가 노동이 된다고 했을 때, 이같은 현상의 참된 뜻은 이 게임플레이를 상품화하는 (불법적인) 시장과 이것의 한 쌍인 (합법적인) 게임 생산 시장과의 연관 속에서, 현재 진행 중인 게임 매체의 변화 속에서, 또 오늘날의 자본주의 구조와 논리 안에서만 온전히 파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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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닉 다이어-위데포드, 그릭 드 퓨터의 <제국의 게임> 5장의 ‘골드 : 거대 축적‘과 ‘골드 경작자: 이주 노동자‘ 파트를 참고하라. 비록 본 책이 이하에서 비판하게 되는 인지자본주의론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들이 ’경작지‘라고 표현하는 ’작업장‘에 대한 조사 연구는 게임 플레이를 상품화하는 불법적인 시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좋은 참조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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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다이어-위데포드,그릭 드 퓨터, <제국의 게임>, 남청수 옮김(갈무리, 2015년): 10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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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인지자본주의론에 비판적인 학자 ‘카르케디’는 오늘날의 신경생리학이 이룬 성취에 존겸심을 표하며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이 주저 없이 비물질인 것으로 파악하는 ‘서비스 제공’, ‘지식 생산’ 따위의 것들 역시나 인간 에너지의 지출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물질적인 것이냐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