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미치는 영향력

  미술계는 본래가 주기적이고, 각 주기는 대략 『아트포럼』 편집장의 임기 기간 동안 지속된다―잉그리드 시시 (1980-’88), 잭 밴코우스키 (1992-2003), 팀 그리핀 (2003-’10). 하지만 특정 양식의 유행과 개념적 담론들의 성쇠와는 별개로 ‘미술’(그러니까 현대 미술, ‘미술계’ 미술, 비엔날레에 전시되고, 주요 미술관들의 전시 공간과 어쩌면 나중에는 유통 시장 딜러들의 수장고를 채우는 미술)이라는 전면적인 문화 현상은 근대 문화계의 검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다소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술은 역사적으로 전위 운동들이 사회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취한 형식이었다. 억압적인 통념들이 해체되고 이중 잣대들이 비판되던 무대였으며, 한스 하케의 작업부터 해나 블랙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구조적 불평등이 폭로되던 장소였다. 뒤샹은 미술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확립된다는 사실을 마치 법정에 서기라도 한 듯이 증명했기 때문에 사랑받았다. 워홀은 매디슨가(광고업계)의 창의력을 정제해 전후 시대 소비문화의 매혹과 공허함을 광고의 언어를 통해 보여 줬기 때문에 사랑받았다. 그가 더욱더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광고의 언어를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들 역시)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대신에 찬미했고, 우리가 소비를 하며 광고의 시각으로 스스로를 판매할 때 얼마나 아름답고 기이해 보이는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또한,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업은 사실상 모든 것이 (살아 있든 아니든) 도살되거나 추출된 후에 진열장 속으로 들어가 자유 무역항에 놓이면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비과세 가치 저장 수단으로 작동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에, 최소한 시장에서는, 사랑받았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작가들(뒤샹과 워홀, 하케, 블랙, 심지어 허스트 역시도)의 작품은 당대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이러한 진실을 후대가 물려받아 마치 타임캡슐처럼 열어 볼 수 있는 사물로 정제하는 능력 덕에 미술의 영역에 존재한다. 한편, 미술 기관의 역할은 이러한 진실을 소중히 다루고, 일관된 서사로 체계화하는 일이었다. 미술 컬렉터라는 칭호는 부유함뿐만 아니라 사회의 진보적인 가치들을 상징했다. 진공 상태 속에서, 미술 후원의 문화적 자본은 동시대 ‘진실’과의 표면적 밀착에 의해 보증됐다. 하지만 문화는 진공 상태 속에서 생겨나지 않고, 이와 같은 체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붕괴된 듯하다. ‘미술’ 그 자체도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미술은 영향력을 상실했나? 그 이유는 뭔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어쩌면 나보다 앞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을지도 모르는 밈을 하나 발견했다. 이 밈은 (두 주체의 연약함/우월함을 비교하는) 찌질이/상남자(Virgin/Chad) 밈의 형식을 취한다. 왼쪽에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찌질이 20세기 작가”로 등장하는 한편, 오른쪽에는 구경꾼에 의해 사진가의 렌즈가 가려진 듯한 어두운 이미지가 보이는데, “상남자 21세기 작가”는 스펙타클을 구경하는 메타-관객의 관점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아브라모비치는 빨간 가운을 입은 채 왜소해 보인다. 이 이미지는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지속적 퍼포먼스 「예술가가 여기 있다」에 기인해 홀로렌즈2(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윈도우 기반 혼합 현실 VR 헤드셋)를 통해 관람하도록 제작된 작품인 「삶」(The Life, 2019)의 스크린샷이다. 이 밈에서 아브라모비치 쪽에 덧입혀진 텍스트는 “찌질이”의 속성들이다―“무언가를 믿는다”, “책을 읽는다”, “주체들을 추궁한다”, “그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설화는 영원히 되살아나며 되팔린다”. 한편, 상남자 쪽에는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를 상품화하고, 자신의 이미지의 CEO가 되며, (가난한) 미대 졸업생들을 고용해 리서치를 하고 그 밖의 모든 작업을 제작하게 한다” 그리고 “20세기 미술의 유령을 되살리고 되파는 능력을 독점한다” 등의 텍스트가 보인다. 분명히 하자면, 상남자가 ‘옳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상남자는 일종의 다윈주의적 현실을, 정확히는 (이미 ‘후기’로 접어든 지 오래인)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상남자는 자연에 대한 반동적 주장을 펼치고 (“힘이 정의다”) 찌질이는 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구성의 과장된 허무주의는 고사하더라도,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한다. 20세기 스타 작가로서의 찌질이는 자신이 행위성을 지닌다고 믿으며, 주체들을 추궁함으로써, 그리고 본인의 경험적, 학문적 지식과 더불어 전문 기술과 희생을 통해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반면, 상남자 21세기 작가는 (테크업계를 비롯한 타 업계와의 협업을 아우르는 다양한 형태의) 미술시장이 ‘예술적 주체성’과 ‘비평성’과 ‘미술사적 전례’와 같은 것들을 끌어오고 내세우는 데만 신경 쓰며, 이러한 것들을 작품의 가치에 대한 그럴듯한 변론으로 활용하는 데만 신경 쓴다는 점을 이해한다. 더욱더 냉소적으로, 상남자 작가의 작업은 금융권 전반이 21세기 이후로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반영한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시장에서 가치 있게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밈이 그렇듯이, 이 밈도 익명의 저자에 의해 제작됐다. (나는 이 밈을 철학자이자 작가인 맷 드라이허스트의 트위터에서 처음 봤는데, 그는 아브라모비치의 홀로렌즈2 ‘혼합 현실’ 작품의 공허함에 대해, 그리고 크리스티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를 ‘미술’로 공동 홍보한다는 사실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이론가 벤자민 브래튼의 트윗에 대한 답변으로 이 밈을 공유했다.)

 

  간결함과 시장에 역행하는 익명성 양쪽 모두를 고려해 볼 때, 찌질이/상남자 작가의 도식은 과거의 그 어떤 역사적인 전위 작가만큼이나 유려하게 현대 미술 생산의 역학 관계를 드러내 보인다. 이 밈이 정녕 미술 작품이며, 논점은 미술이 영향력을 상실했는가의 문제가 아닌,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미술이 한때는 지지 기반이었던 ‘미술계’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는가의 문제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자. 미술은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길을 잃어버렸나?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가장 최근에 쓰인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4분기에 완성된) 아트 바젤 UBS 시장 리포트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익명의 딜러가 내놓은 소견이 눈길을 끈다―“2020년은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다 (...)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이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이러한 사건들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위협이다. 아무리 경기가 좋고 소비력이 여전히 높아도, 방해 요소와 불안은 미술 구매를 꺼리게 한다.”

 

  이 딜러의 말이 진정 일반적인 견해라면, 현재 미술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이란 말인가? (서구 국가들은 일종의 국제적인 서사의 붕괴로서 경험 중인) 세계라는 무대 위에서 미술계 미술은 경쟁할 수 없다. 아무리 잘해봤자 예스럽고 뒤처지며, 최악의 경우에는 사치스럽고 근시안적인 미술계 미술은 중도 리버럴, 기후 변화, 그리고 늘어나는 빈부 격차의 실패를 더욱더 복잡하게만 할 뿐인 정치적 규범과 사회적 행동을 직접적으로 부추긴다.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주류 언론의 불안정, 첫 번째 브렉시트 국민투표, 그리고 트럼프의 당선을 꼽으며) 2016년을 미술계가 와해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잘못 꼽을 테다. 하지만 지난 십 년 동안 나타난 미술 운동 전반과 지역 씬의 해체, 비엔날레 규모 전시들의 일관성 감퇴, 미술 언론의 질과 양의 하락, 싫증나는 아트 페어, 확고해진 블루칩 시장, 그리고 검열자들로 정신없는 KAWS식 미술의 가치 폭등은 미술계의 영향력이 최소한 2010년대 초반에는 이미 정점을 지났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 기나긴 이야기는 미술 작가 죠슈아 시타렐라가 12월 말 인스타그램에 올린 스크린샷으로 요약된다. 그의 메모장 앱에 입력된 세 문장은 다음과 같다. “2008년 이후의 경제 회복은 거의 대부분 위로만 흘렀고, 새로운 컬렉터 계급을 부유하게 했다. 소셜 미디어는 미술계의 가시성을 빠르게 재편했다. 이러한 변화들이 시장을 불안정하게 했다 (...).” 시타렐라는 (브래드 트로말과 대니얼 켈러, 그리고 텔파 클레멘스와 HBA의 셰인 올리버와 같은 디자이너들, 또 그 밖에도 DIS-매거진과 관련된 다른 이들과 함께) 전통 미술계의 끝물에 (즉, “찌질이 20세기 작가”의 논리가 아직 유효했을 때) 미술계의 몰락과 그 밖의 광범위한 타 분야 문화 비평을 분석하며 등장한 소규모 작가, 창작자 집단의 일원이다.

 

  어찌 보면, 이것만 알아도 충분하다. 미술은 한때는 진실을 이야기했고, 그렇기에 미술로서 존재하며, 가치를 부여받았다. 그러다가 2008년을 전후한 어느 시점에, 현금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양적 완화(즉, 제로 금리)에 힘입어 대안 자산으로 미술에 과도한 투자를 하면서, 미술계 미술은 ‘진실’이라는 우위를 상실했다. 그때부터, 미술 평론가와 큐레이터와 작가 공동체 들이 미술계의 실질적인 가치 확립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대규모 시위에서 골판지 팻말을 든 사람들이 다국적 기업들의 사업에 행사하는 영향력과 다를 바 없었다. 작가들은 미술업계에 편승해 자본과의 밀착을 즐기거나 (계급 이동의 허상), 가장 적나라한 플래카드를 만드는 비교적 불안정한 마이크로셀러브러티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쩌면 이 순간이 현대 미술이 분열되기 시작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한편에는, 이론으로 점철된 끊임없는 공개서한들을 통해 과도하게 자본화된 미술계의 지형을 바로잡아 일종의 사회민주적 이상향으로 돌아가려던 자들이 존재했다. (상남자와 의미 없는 싸움을 하는 찌질이.) 이처럼 저항적인 태세는 사회적 인정, 유명세, 그리고 능력주의에 기인한 자금 지원에 대한 암묵적 기대를 동반했다. 반면에 다른 한편에는, (인류세적 비유를 빌리자면) 회복력이나 심지어 단념으로 태세를 전환한 자들이 존재했다. 미술계가 무너져 내릴지라도 작가들은 존재할 텐데, 다만 이제는 이런저런 직업과 투자를 통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엘리트주의 업계와의 기생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작가일 뿐이었다. (상남자가 아닌 밈 제작자.)

 

미술과 시위

 

  2008년 금융 위기 때만 해도, 미술 논평을 쓰거나 전시를 하는 쪽보다 (월가를 점거하라 등의) 시위에 참가하는 쪽이 더 낫고 만족스러운 참여감을 주고는 했다. 그러므로, 2010년대 들어 그리도 많은 미술 작업들이 구좌파식 저항 형식을 주력 상품화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일단 첫째로, 시위나 공개서한은 권력을 향해 진실을 이야기하는 알아듣기 쉬운 방식이다. 둘째로, 이처럼 대중 매체에 특화된 행동들은 소정의 관심을 보장한다(미술관 직원 전원이 건물의 중정에 집결하는 행위의 신선함이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문화예술업종의 가치 절하를 설명하는 미술적 리서치 작업보다 더 관심을 끌듯이 말이다). 그리고 셋째로, 이러한 행위는 확연히 비엘리트주의적이고,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노동 계급의 문제와 동일시하게끔 한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미학적으로는 고다르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1960년대식 저항 전략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화적 가치를 창출했다. 진실을 위해 싸우며 그 과정 속에서 관심을 얻고, 다른 불안정한 분야들과의 연대를 선보이며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일종의 정당성 또한 얻어 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개는 미술계의 상상력이 지닌 핵심적인 결점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러한 형식들은 퇴보적이고 향수를 자극할 뿐더러,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예술적 행위성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잘못 이해하는 듯하다. 2017년에, 트럼프가 취임 다음날 자신의 당선에 이의를 제기하며 국제적으로 진행된 여성 행진에 대응한 방식을 보라. 트럼프는 트윗을 통해 그들의 집단행동을 미국 민주주의의 놀라운 표현이라며, 4백만 명이 넘는 미국인 참가자들을 칭찬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예리하고 시각적으로 돋보일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대부분의 미술계 시위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미술 작가들을 ‘급진적‘이라고 여기는 무관심한 컬렉터들의 낭만적 관념을 부추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위는 누구를 위해 하나?’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그리고 또 언제부터 작가의 역할이 세상 물정을 추궁하는 역할에서 세상을 구하는 역할로 바뀌었나? 분명히 하자면, 미술 작가들은 행동가가 되면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행동가들은 많을수록 좋고, 작가들이 주도한 몇몇 캠페인은 분명 멋지고 효과적이었다(예를 들면, 낸 골딘이 주도한 P.A.I.N.의 새클러 반대 캠페인). 하지만 지금의 미술계는 행동주의와의 밀착을 통한 자기 정당화에 왜 그토록 의존하는가?

 

컬렉팅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컬렉팅의 변화와 연관됐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2010년대 초반에 ‘좀비 형식주의‘(20세기 후반의 추상 작품들이 탄생했던 정치적 맥락은 결여된 채로 표현 양식만 가져오는 회화 작업)를 유행시킨 뒤에, 단기 수익을 내며 작품을 처분하면서 화제가 된 독립 딜러이자 컬렉터인 스테판 심초위츠에 의해 대변되는지도 모르겠다. 심초위츠가 수집한 몇몇 작가들은 (상남자 작가 행세를 하며) 시장의 요구에 순응하고, 밈에서 설명한 대로 “20세기 미술의 유령을 되살리고 되파는 능력을 독점“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연장시키는 법을 터득했다. 오스카 무리요는 이를 완벽하게 해냈다. 한편, 심초위츠와 그가 경매에 내놓은 작품들을 구매한 컬렉터들의 금전적인 목적은 금리가 기록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미술 작품을 일반적인 증권을 능가하는 고수익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2010년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정체성을 중시하는 2016년 이후의 미술 시위들의 요구에 발맞춰 작가 목록을 손보기 시작한 대규모 갤러리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중견 작가들, 특히 여성이나 유색인종이고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커리어를 지닌 작가들의 작품 목록으로 눈을 돌렸다. (실상은, 작품 공급이 수월하고, 경매가가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에 가치 상승에 따른 큰 차익이 보장되는 작가들.) 이러한 중견 작가들의 작업이 문화적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은 찌질이 작가가 수호하고 싶어 하는 듣기 좋은 가치들을 모두 대변한다. 다만, 이러한 작품들이 오늘날의 중차대한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시장 가치가 폭등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이러한 작품들은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미술계 미술도 마찬가지인데) 좌파 내부의 미시정치적 집합체와 갤러리의 금전적 목표로 인한 초고평가의 표면 역할을 한다.

 

디지털성

 

  “소셜 미디어는 미술계의 가시성을 빠르게 재편했다”는 시타렐라의 두 번째 논점은 문화계 전반이 뼈저리게 경험했고, 미술계에서는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체적으로, 미술계는 공공연히 스크린 공간으로의 전환과 디지털성, 그리고 속도에 저항했다. 심지어 2020년에도 오프라인으로 경험하는 미술, 장문의 전시 설명 글, 그리고 인쇄물의 귀중함에 대한 논의가 지속된다. 이러한 반응이 미술계를 오래도록 지탱해 온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는) 체제와의 결속을 표명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찌질이의 관점이며, 이러한 태도는 (시장의 법칙에 동화된 상남자 행세를 하는) 딜러들이 자신들의 갤러리를 『컨템퍼러리 아트 데일리』와 같은 웹사이트에 올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며, 기술적으로 가능해지자마자 아트 페어에 출품하는 작품 목록을 PDF로 만들어 사전 판매한다는 사실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한 탁월한 현시대적 견해를 위해서는 마이클 산체스[1]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를 또 하나의 주요한 갈림길로 본다. 한편으로는 콘텐츠 제작자들과 학자들이 미술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를 꼽으며 기술적 전환을 거부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갤러리들이 시장의 요구에 발맞춰 신기술의 지형에 적응해야만 했다. 역설적으로, 갤러리들은 디지털성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순전히 이미지적으로만 다루는 작품들을 판매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고 (2010년대의 컬렉터들은 20세기 미술사와의 명확한 연결고리를 원했고, 이는 높은 경매가를 보장했다) 스크린 공간 속에서 회화만큼 멋져 보이는 것도 없었다. 보라, 쿨톤 형광등 빛 아래 흰 벽을 배경으로 찍은 캔버스의 평면적 표면을, 깔끔한 흰색 웹사이트에 떠 있는 고해상도 JPEG로 담아낸 작가의 귀중한 손길을, 그리고 바로 그 옆에 훌륭한 평론가가 써낸 역사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탄탄한 믿음이 가는 글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찌질이 작가들은 (대개는 그들의 ‘미술과 시위’의 일환으로) 이제껏 해 오던 대로 작업하도록 권장 받았다. 상남자 딜러들의 보호를 받으며,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디지털 전환에 맞선 저항의 기록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적 영역

 

  하지만 이러한 분열 속에서, 미술계 미술은 사회 실정에 대한 깊숙한 진실을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미술계의 주인공들은 시장과 직접적으로 동조할 때를 제외하고는 무기력했으며, 찌질이/상남자의 원형을 몸소 체현하면서 갈수록 의미 있는 ‘쿨’한 씬을 유지하지 못했다. 미술계와의 밀접성이 상징하는 사회적 가치가 위축되면서, 갤러리 개막 행사와 미대의 매력과 같이 미술계 네트워크와 연관된 일상적인 문화들도 위축되기 시작했고, 미대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학생의 수는 어차피 줄어드는 추세였다. 아트 바젤 UBS 시장 리포트에서 인용한 딜러가 정확히 지적한 대로, 현실 그 자체가 더 흥미로워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VPN으로 보호받는 p2p 파일 공유를 통해, 인터넷은 감시 사회의 오싹함에 대한 푸코적 견해들, 폴 B. 프레시아도와 실비아 페데리치의 사고에 기인한 신체정치, 브루노 라투르의 시각으로 본 깊숙한 적응(deep adaptation), 벤자민 브래튼의 ‘스택’을 통해 보는 국제 질서의 변화, 닉 스르니체크의 ‘플랫폼 자본주의’를 통해 보는 노동 조건을 비롯한 수많은 이론들로 넘쳐났다.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많은 미술 작가들 또한 이러한 글들을 읽고는 했지만, 2008년부터 미술 잡지를 편집했던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주요 담론은 미술계 미술 밖에서 이루어졌다. 정보 유출과 내부 고발자 문화(첼시 매닝, 줄리언 어샌지, 크리스토퍼 와일리)의 부상부터 젠더와 퍼포먼스의 질문들까지, ‘컨셉트로니카’ 음악(아르카, 암니시아 스캐너, 홀리 헌든)부터 패션의 밈적 전환(베트멍, 오프화이트)까지, 또는 찌질이/상남자 밈과 같은 것들이 생겨난 끝없고 기이하며 때로는 거슬리는 디지털 채널들이나 팟캐스트 문화만 보더라도, 이론은 클럽에서, 음악에서, 온라인에서, 패션을 통해, 그리고 대중문화를 통해 생겨나고 있었다.

 

2020년 봄

 

  이 글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전, 아트 바젤 홍콩이 취소됨에 따라 다른 모든 아트 페어와 경매가 최소한 여름까지 연기되기 전에 의뢰됐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모든 미술관과 갤러리와 경매장은 문을 닫은 상태다. 천만 달러의 손실을 예상하는 구겐하임 뉴욕은 92명의 직원들을 일시 해고했고, 휘트니 미술관은 76명을 내보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은 85명을 해고했다. 우리가 알던 미술계는 이번 사태로 인해,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메일을 열자, 12개의 소규모 뉴욕 갤러리들을 가상으로 방문하게끔 해 주는 데이빗 즈워너의 「플랫폼: 뉴욕」의 초대장이 눈에 띈다. 각각의 갤러리들은 동일한 웹페이지를 할당받았으며, 각자 한 명의 작가가 만든 두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작가와 기획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제외하면 개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즈워너는 메타-노드로서 수수료를 받지 않으며 그 어떤 비용도 청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론, 이와 같은 디지털 합의에서는 소규모 갤러리의 작가들은 즈워너의 작가들이 되고, 소규모 갤러리의 트래픽은 대규모 갤러리의 소유가 된다. 또 다른 이메일에서는, 아트넷이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디지털 갤러리 방문”을 하며 보내라고 한다. 창의적 행위의 힘과 독립성에 기반을 둔 업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서 보이는 자유의 결핍과 상상력의 한계는 말문이 막힐 정도다.

 

  글을 마치며, 안드레아 프레이저가 2006년 『아트포럼』에 기고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기관에 맞서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기관이다. (...) 우리가 어떤 형식의 작업들을 보상하며, 어떤 보상을 열망하느냐의 문제다.” 분명, 지금의 보다 큰 문제는 누가 미술 중심적 ‘우리’와 동질감을 느끼는지, 그리고 더욱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 미술 중심적 ‘우리’가 존재 가능한지의 문제다. 나는 답을 모르지만, 모든 물리적 미술 기관이 문을 닫고 많은 이들이 실직한 2020년 현재, ‘미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고해 봐서 해로울 건 없다. 아직 그 답을 찾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다.

 

필자 캐롤라인 버스타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저술가이자 편집자이다. 네트워킹 기술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미디어 채널 겸 커뮤니티인 『뉴 모델스』를 공동 창립했다. 『텍스트 주어 쿤스트』(2014-17)와 『아트포럼』(2008-14)의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역자 이계성은 순수 미술과 미디어 예술을 전공했다. 세스 프라이스의 자전 소설 『세스 프라이스 개새끼』(작업실유령, 2021년)를 옮겼다.

[1] Contemporary Art, Daily, in Art & Subjecthood, Sternberg Press,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