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무빙 이미지, 그리고 영화의 종언: 콩종크튀르(conjoncture)로서의 포스트모던을 넘어[1]

 

“힘도, 의미도 없는 허수아비 로고스에 대한 해체는 멈춰도 좋다.

로고스는 한낱 자본의 화신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가장 실질적이고도 위협적인 해체의 실천은 마르크스주의이다.”

 

 

1. ‘무빙 이미지’라는 동어반복

 

  어느 순간부터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라는 개념이 동시대 미술장에 편재하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내로라하는 큐레이터들의 서문에서, 작가들의 스테이트먼트에서, 비평가들의 작업에서- 문제의 무빙 이미지가 심심찮게 등장했던 장면들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빙 이미지’의 인플레이션에 관해서는 다음의 사례들을 톺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2004년 발족한 ‘무빙이미지포럼’, 2006년 아트선재에서 열린 ‘제1회 국제디지털무빙이미지 페스티벌’, 2008년 인사미술공간의 <시네마틱, 무빙 이미지의 확장: 아티스트 필름 & 비디오 쇼케이스(무빙 이미지 아카이브)>(9.17-10.12), 2012년의 <무브 온 아시아: 동양적 은유>(대안공간루프. 6. 20- 7.5), 2016년부터 진행되어온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 필름 앤 비디오>, 문래예술공장의 전시와 퍼포먼스 <무빙/이미지>(2016.7.15-7.31), 아르코 미술관의 <무빙/이미지>(2017.7.21.-9.3)에 이어, 2017년 9월 한국문화연구학회의 월례포럼 <경계넘어 사고하기: 무빙 이미지, 테크놀로지, 그리고 공동체>, 2018년 이후로 활동해온 AAMP(아시아 아티스트 무빙이미지 플랫폼), 프랑수아 보비에, 아디나 메이가 편집한 『무빙 이미지 전시하기: 다시 본 역사』(김웅용 역. 워크룸, 2019.)라는 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말이다. 이는 영미 등의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예컨대 1988년 뉴욕에서 개장한 '무빙이미지박물관(Museum of the Moving Image)'에 이어, 2002년엔 ‘호주 무빙이미지 센터(Australian Center for the Moving Image)’가 설립되었고, 93년 발행을 시작한 호주의 저널 Moving Image, 95년부터 발행되었던 영국의 Coil, 2001년 미국 미네소타 출판부에서 펴내기 시작한 Moving Image등의 개시 전후로 각 대학을 기반으로 펴내어진 Moving Image Review & Art Journal, Museum of the Moving Image 따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것은 그 개념이 모종의 의미심장한 함축을 담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주면서도, 본질적으로 동어반복적이라는 데에 있다. 오늘날 미술장(field)의 경우를 볼 때 으레 영상 설치가 이뤄지는 곳이라면 ‘무빙 이미지’라는 수식이 따라붙게 되는데, 허나 기본적으로 영상(video)이라는 것이 ‘움직이는 상(moving image)’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더욱이 ‘moving image’ 자체를 철저히 한글로 번역한다고 할 때, 그것은 그저 ‘동영상’이라는 익숙한 개념어가 된다. 그러니까 이는 이런저런 경향의 조각 작업들을 한데 모아놓은 뒤, 이들을 ‘objet(대상;작품)'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달리 말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모아 둔 뒤, 그것을 새삼스레 ‘고기’라 알려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형식적, 내용적으로 상이한 지향을 담고 있는 여러 갈레의 영상들을 모아 둔 채 ‘무빙 이미지(동영상)’라 얘기하며, 이로서 개별 작업들에 대한 설명을 완료했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수많은 전시와 비평으로부터 모종의 정신박약을 읽어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동어반복적 개념이 도처에서 소환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기엔 분명히 징후적인 독해를 요구하는 무언가가 있다.

 

  백남준 아트센터의 <상상적 아시아>(2017. 3.9-7.2)의 전시 서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이는 ‘무빙 이미지’에 대한 통상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비디오 아트는 21세기 디지털 기술로 인해 무빙 이미지 개념으로 확장되었고 비디오, 영화, 애니메이션 등 영상 장르의 구분이 더 이상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2]

 

  즉 'moving image'란 그 뜻 그대로 ‘움직이는 상’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운동’을 현전시키는 시각적 작업물들을 가리킨다. ‘motion picture’, ‘moving picture’ 등이 대체어로 종종 사용되기도 하나, 이들은 ‘무빙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는 이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필름 영화와 텔레비전, 비디오 등에 국한되는 용례로 제약되며, 반면 'moving image'는 으레 ‘(고전적)필름(영화)’에 따라붙는 ‘사진/그림(picture)’의 맥락을 소거한 채 포괄적인 뉘앙스를 전달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즉 (moving) ‘picture' 대신 (moving) ’image'가 헤게모니적인 개념으로 부상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식이 전제된다:

 

  “사진,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비디오, 컴퓨터 게임 등 이런저런 무빙 이미지는- 우리를 내려다보는 인공위성에서부터, 우리로부터 눈길을 돌리는 망원경, 자기공명영상법(MRI), 뇌파기록기(EEG), 우리를 향하는 초음파 음향기록장치, 우리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확장이 되어온 개인용 컴퓨터, 휴대전화, 아이패드 등에 이르는- 전지구적 장치들의 배열에 의해 생산된 외부적/내부적 세계에 대한 이미지들과 섞이고 혼합된다.”[3]

 

  그리하여 편재하는 이미지의 조건, 다변화된 매체적 조건 속에서 나타나는 상 전체를 적절히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 곧 ‘무빙 이미지’라는 것이 그 골자다. 그러나 거의 지적되지 않는 것이지만, 이는 포스트모던한 장르 붕괴의 결과를 반영하며, 그와 같은 붕괴를 합리화하는 손쉬운 알리바이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오늘날 여러 미술/영화 행사들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 된- 극장용 영화의 미술관 내로의 진입, 설치영상의 극장 스크리닝이라는 혼성적 사태는,[4] 그 역사적 과정과 귀결이 온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무빙 이미지’라는 한 마디 말로 대강 봉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무언가 잘 범주화되지 않으며 설명이 되지 않는 대상에 그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보다 전개된 인식으로 나아갈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 ‘무빙 이미지’는 안성맞춤의 대피소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여기에는 포스트모던 작업 특유의 ‘전용’과 대중문화에 대한 직접적 참조가 ‘파운드 푸티지’의 동원이라는 형식적 당위 아래 온갖 광고, 뉴스 등의 영상을 전유하는 과정에서, 이어 영화 이미지가 자연스레 전유될 논리적 가능성이 열렸다는 미술 내의 변증법적 과정이 고려되어야 하며, 동시에 모더니즘적 작가주의 영화의 동력이 고갈될 즈음 (영미/서유럽을 기준으로)60-70년대의 컬러 텔레비전의 보급과 80-90년대의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으로 인해 극장이 운동하는 이미지를 상연하는 특권적 공간이 아니게 되면서, 모더니즘 영화를 지탱했던 극장의 종별성이 사라지고, 이어 총체적인 영화적 체험을 허용했던 ‘Kino’라 할법한 것이 몰락하는 영화 내의 변증법적 과정이 고려되어야 한다.[5] 이 포스트모던의 계기들은 각각 상이한 방식으로 각 매체에 작용하여, 미술은 영화적인 것이 되게 하고, 동시에 영화는 굳이 극장이 아닌 곳(가령 텔레비전에서부터, 컴퓨터 화면, 혹은 미술관)에서 얼마든지 나타나도 괜찮은 것으로 변모시켜왔다는 것이다.

 

 

2. ‘무빙이미지’를 역사화하기

 

  ‘무빙 이미지’가 단일한 개념으로 부상하는 시점 역시 이와 같은 관찰에 힘을 보태준다. 이 개념은 헐리우드 및 세계 영화산업에 대한 분석을 주로 수행한 영화학자 고르엄 킨덤(Gorham Kindem)의 작업 Moving Image: Production Principles and Practice (1987) 이후로 점차 주목되어 온 것으로서, 영미를 기준으로는 90-2000년대에 걸쳐 점차 널리 쓰이기 시작했으며, 한국을 기준으로는 2000년대 중반 전후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2010년대에 걸쳐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포스트모더니티가 전지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서 완연히 관철된 때이기도 하다. ‘무빙 이미지’의 배면에는 단연 포스트모던의 조건이 공기와도 같은 배경으로 자리한다. 많은 이들이 이 용어를 별 거리낌 없이 사용해 온 데에는 이와 같은 경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헤겔이 말했듯, 모두가 어떤 대상에 관해 별도의 노력이 없이 얘기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놀라운 것은 이 개념 사용에 대한 반성의 부재인데, 예컨대 어째서 ‘무빙 이미지’와 같은 범주가 실질적으로 대두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개념이 전제하고 있는 세계관은 무엇인지 등을 반성하고 추적하는 작업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앞서 간단히 살펴보았듯, 매체환경의 다변화와 복잡화의 결과로써 ‘무빙 이미지’라는 대응 범주가 요청된다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은 그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오히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무빙 이미지’ 자체가 무엇의 결과이냐는 것이다. 하이데거 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와 같은 ‘무빙 이미지’의 존재물음이라 할법한 것이 전무했다는 것은 그 개념이 근래 폭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빈도에 비하면 더욱 의아한 일이다. 그리하여 ‘무빙 이미지’를 논의의 대상으로 소환하는 모든 작업들은 이 개념이 마치 하나의 자연대상물인 것처럼, 그것이 별도의 설명과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듯이 원용하곤 한다.[6] 그러나 무빙 이미지란 과연 자연과도 같은, 즉자의 범주인가? 오히려 그것은 동일한 이미지의 위상을 전연 다른 방식으로 발견하게 하는 역사적 낙차 속에서만 힘을 가지게 되는, 역사적인 개념이 아닌가? 결국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런 것이다: ‘움직이는 상’이라는 것은 최소한 1832년의 페나키스토스코프(phenakistoscope) 이후, 1834년 조이트로프(zoetrope) 등을 거쳐,[7] 1878년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움직이는 말(The Horse in Motion)> 연속 사진, 1881년의 마레(Étienne-Jules Marey)의 시간사진술(chronophotography), 1895년의 뤼미에르 형제의 <시오타 역으로의 기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 이후 언제나 있어왔음에도 불구, 왜 동시대의 조건에서 소환되어 왔는가?

 

  이는 앞서 말한대로 TV와 컴퓨터 등 포스트모던 문화의 작인(agent)들에 의해, 제약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의 군중과 함께 스크린의 환영을 응시하며 침잠하는 실천으로서의 영화적인 것(the cinematic)이 분열되었으며, 이 속에서 Kino의 붕괴로 말미암아 ‘film’이 점차 이미지 일반으로 해소되었기 때문이고, 점차 편재하게 된 소비사회의 이미지 기호와 대중문화에 넋을 놓으며 상품의 세계에 양도된 ‘미학’을 표지했던 팝아트적 전용을 기점으로 미술관이 소화하지 못할 것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무빙 이미지’의 세계에는 영화적인 것은 없고, 다만 이미지만이 있을 따름이다. ‘무빙 이미지’라는 개념으로부터 Kino를 전제하는 작가주의적 실천을 연상하기란 어렵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쉬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이제 미술의 종별적인 대상은 없고, 편재하는 이미지의 일시적 조합 이외에 작가가 할 것은 없게 된다. 이는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단독성의 미학’이라 표현했던 사태와 동일한 지점을 가리킨다.[8] 이처럼 무언가 더 이상 ‘작품’, ‘세계/실재를 담지한 조형적, 시청각적 결과물’로 독해되기 어려울 때 그 공백을 메워 온 ‘무빙 이미지’란 결국 실재와 분리된 이미지 세계 자체의 자폐적인 자기지시성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다.[9] 요컨대 우리가 무언가를 ‘무빙 이미지’로 소급시키는 순간, 그 한갓된 질료적 차원 이외의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성질들(예컨대 이미지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이미지 생산에서의 권력의 계기, 작가의 지향과 목표 등)은 휘발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기지시성의 배면에는 당연하게도, 온갖 플랫폼과 화면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광고들에서 관측 가능한- 상품에서 파생된 의사(pseudo)경험들, 시청각적 경험과 기억 자체를 전투적으로 생산해내는 연예기획사, 방송국, 영화배급사, OTT 플랫폼,[10] 무수한 광고이미지들과 결탁한 SNS, Youtube 등 문화산업의 기지가 있다. 이 같은 자폐적인 이미지의 순환 세계를 가리켜 우리는 ‘포스트-스펙터클’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무빙 이미지’의 당위를 ‘디지털적 조건’에서 도출시키거나, 다매체적 성질을 띠는 작가들의 작업을 ‘하이브리드 무빙 이미지’라 명명하며 해맑게 기뻐하는 김지훈 식의 접근은 동시대의 혼종적 매체 양상의 현상에 대한 저널리즘적 기술(description)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들을 과정으로서 조명하여 동학(dynamics)을 설명하는 이론은 될 수가 없다.[11] 그와 같은 접근은 앞서 살펴본 바 포스트모더니티의 내적 논리가 각 매체를 통해 관철되어 온 역사를 볼 수 없으며, 따라서 포스트모더니티 자체를 규제하고 관장하는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흐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무빙 이미지’란 자연이고, 실체이다. 그 연장에서, 김지훈이 ‘포스트 인터넷’ 경향의 작가들을 분석하기 위해 무반성적으로 원용하고 있는 바- 샘플링(sampling)과 리메이킹(remaking) 등을 아우르는 ‘포스트프로덕션’(Nicolas Bourriaud)의 방법론조차 실은 포스트모더니티의 내적 귀결이라 할 법한 것으로, 일찍이 프레드릭 제임슨에 의해 ‘혼성모방’으로 비판된 현상의 연장에서 독해되어야 한다.[12] 요컨대 “글로벌 문화를 어떤 툴박스로서 간주”하는 실천으로서의 부리오식 포스트프로덕션이란 일찍이 무맥락/무매개적으로 과거의 형식들을 소환하는 향수영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테크노 음악의 디제잉 등에서 예표된 ‘역사부재의 형식화’를 동시대 테크놀로지를 통해 완성된 수준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분열증자의 무반성적 반미학이다. 그리하여 김지훈이 주목하고 있는 바로 그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에 의해 제공된 테크니컬한 도구들과 정보 행위들의 대중성”[13]이란 그 본질적 형상에 있어- 노무현의 이미지와 음성 등을 기존의 여러 문화적 산물들과 맥락 없이 괴랄하게 뒤섞는 일베 식의 미학, 혹은 실소를 자아낼 만큼의 가벼운 완성도로 그때그때의 감각지각을 사로잡았다가 이내 휘발되는 짤방(meme)에서 웅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은 무반성적이고 즉자적인 유희를 통해, 고전적 작품들이 요청했던 것처럼 세계를 향하기보다는 일순간 형성된 코드를 독해하고 공유하는 일시적 '떼(mob)'에 귀속되는 자폐적인 자기 현전의 감각에 자족하는 동시대적 경향을 예표한다(이는 약 한 달 안팎의 meme의 짧은 순환주기, 많은 이들이 특정의 meme을 주목하는 순간 하향하는 meme의 가치 등에서 명증하게 알 수 있다. meme은 침잠을 요하지 않는 이미지이며, 확장성을 거부하는 이미지이다). 이 같은 자폐성은 SNS 상의 실천,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타자와 관계 맺는 다기한 방식 등을 관류하는 것으로, 김희천, 강정석 등 ‘포스트 인터넷 예술’ 경향의 작가들의 작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3. 상부구조를 향한 사회적인 것의 응축: 은유로서의 ‘동시대’

 

  이렇게 볼 때, ‘무빙 이미지’란 정확히 동시대적 난관을 예시하는 하나의 은유이며, 현 사회의 증상이다. 그것은 하나의 상품이자 통치 메커니즘으로서의 이미지가 삶의 전 구역에서 생산되고 관리되는 세계를 반영하며(이것이 바로 ‘무빙 이미지’를 원용하는 이들이 추상적이게나마 파악하고 있는 이미지의 편재성의 정체이다), 동시에 그와 같은 세계를 적절히 이론화 시키지 못한 채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매체들이 빚어내는 환등상(phantasmagoria)을 정신없이 따라가며 히스테리적 숭고에 자족하는 지적 경향을 표현한다. 매트릭스식 은유를 빌자면, 붉은 알약을 통해서만 보이게 되는 포스트-스펙터클의 실재를 보지 못할 때, 건조한 객관성을 참칭하는 ‘매체’를 중심으로 뒤집힌 세계에 머무는 이들이 접근 가능한 개념이 바로 ‘무빙 이미지’인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일견 중립적으로 보이는 ‘무빙 이미지’의 개념이, 실은 일종의 인식론적 퇴행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사용되며, 나아가 매체론적 편향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이는 보편적인 증상인 바, 앞서 살펴본 ‘무빙 이미지’가 근본적으로는 영화로부터 연원한 개념이라면, 미술에서 역시 나름의 등가물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동시대(contemporary)’라는 개념이다. 동시대란 -마치 meme이 그러하듯- ‘지금’, ‘현재’라는 의미 이외에는 어떤 충동도 갖지 않는 무미건조한, 무표정의 시간대를 가리킨다.[14] 이는 시간을 대하는 에토스와 인식론에서의 심원한 단절을 암시하기에, 단지 아직 역사화/경전화 되지 않은 시간대를 가리키는 기술적 용어로 이해되어선 안 된다. 요컨대 ‘modern art’란 명실상부 고전주의와 봉건적 세계관으로부터의 단절을 꾀함으로써 출발했듯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낙관적 충동’, ‘미술의 종별성과 순수성을 간취하려는 유미주의적 충동’, ‘정치 및 사회의 제(all) 부문과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순수성을 탈구축하려는 충동’ 등으로 지탱되었던 시퀀스이다. 하여 아직 모더니즘 자체가 완전히 역사적으로 규명되고 청산되기 이전에도 'modernist'라는 호명이 가능했으며,[15] 이때 ‘모더니스트’란 위의 충동들을 가진 것으로 전제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contemporary art'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로부터 운용 매체와 형식의 다기함, 일관된 정치적 경향의 부재 이상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 'contemporary art'를 정의하는 수많은 시도들은 그 속에서 이념의 부재, 원리의 부재를 확인할 따름이었으며, 그것은 개념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이는 개념으로서의 'contemporary art'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관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을 추적했을 때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동시대 미술’은 1979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적 조건(La condition postmoderne)>(1979)의 출간과 더불어 담론화 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80년대에 그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는 완연히 편재하게 된다.[16] 여기서 분명한 것은 모더니즘 이후의 시간대를 설명하기 위해 ‘postmodern’과 거의 동시에 'contemporary'가 도입되었으며, 또한 양자 모두 60년대 중후반 내지 7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시기를 가리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동시대 미술‘을 수식하는 특징으로 으레 셈해지곤 하는 전지구적인 연결, 세계화된 문화 속 시각장의 혼성성, 일관된 목표와 충동, 이념의 부재 등은 정확히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징이기도 하다. 즉 양자는 사실상 동일한 것의 다른 표현이라 해도 좋다. 다만 ‘postmodern'이 ’modern'과의 관계 속에서, 통시적으로 맥락화되는 것이라면, ‘contemporary'는 동일한 시간대를 공시적으로 맥락화 하여, ‘postmodern’의 시간성과 원리가 하나의 자연법칙처럼 현상하는 때에 관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적지 않은 이들이 오해하듯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동시대미술이 아니라,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동시대 미술)인 것이다. 따라서 모더니즘 이후에 오는 것은 전부 ‘동시대 미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앞서 ‘무빙 이미지’에서 살펴본 모종의 동어반복과 정신박약을 관측할 수 있는 바, 예컨대 어느 시점에서나 당대에 생산된 예술은 모두 ‘동시대’적이기에, 그것은 의미 있는 정보가를 지닐 수 없다(모든 예술은 그 당대의 인간들에게 ‘동시대 예술’이다). 이렇게 시대를 가리키는 개념으로부터 즉자적 시간의 현재성 이상의 의미를 읽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서 미술사적 임무의 방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을 구조화할 수 없는- 인식론적 퇴행의 징후를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개념 사용이 가속화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뉴미디어아트(new media art)’ 개념이 도입되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90년대 이후로 널리 회자되어온 뉴미디어아트 또한 전자 기술적 테크놀로지에 기반했다는 매체론적 공통성 이외에 어떤 함의도 전달하지 않는, 건조한 개념이다.[17] 실로 우리는 ‘뉴미디어 아트’를 기점으로(혹은 그보다 앞서 등장한 ‘비디오 아트’에서 그와 같은 징후를 찾을 수도 있겠다), 오늘날의 ‘포스트-인터넷 아트’에 이르기까지 매체중심의 사조구분이 거의 주류가 되어버린 광경을 볼 수 있게 된다. 일견 매체상의 교집합으로 상위의 포괄개념을 도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술적 용어가 헤게모니를 잡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특정의 사조와 경향을 그 종별적 특징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명명하는 것과 그들이 사용한 매체를 중심으로 부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전제하며, 상이한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체의 권위와 제도, 예술 자체를 조소하며 부정하려 했던 다다이스트를 두고 ‘퍼포먼스 아트 그룹’이라 부르는 것은 타당한가? 혹은 ‘아방가르드’ 혹은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실험적 다매체 예술의 시퀀스’라 부르는 것은 타당한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자폐적인 매체론자, 형식주의자라면 긍정할 수도 있겠으나, 건전한 미술사적 상식을 지닌 이들에게는 이미 개념 자체의 내적 한계로 말미암아 이 같은 규정의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본질적 부분들이 누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개념 규정의 잘못만은 아니다. 실제로 최후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였던 상황주의가 힘을 잃어갔던 60년대 후반 이후, 특정 예술이 사회와 맺는 관계, 사회에 대해 갖는 입장과 태도 등을 축으로 특정의 사조를 명명하기란 점차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대자적인 차원은 작업 자체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으며, 자연스레 질료, 매체 등의 즉자적인 것들에만 주목할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의 작품 경향이 사회-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규명이 없다면, 그리하여 그와 같은 대자적 계기로 모종의 사조를 파악할 수 없다면, 미술사는 의미 없는 형식, 질료 수준의 배치들이 그때그때 명멸하는 무의미의 축제가 된다는 것이다.

 

  ‘무빙 이미지’가 근거하는 지평은 이로써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된다. 그것은 ‘동시대 미술’을 만들어낸 것과 동일한 역사적 기제에 기대고 있다. avant garde, modernism 이후에 오는 것이 ‘동시대 미술’이듯, Kino, cinema 이후에 오는 것이 ‘무빙 이미지’이다. 양 개념은 대상의 본질을 뚫고 들어가는 인식을 생성하는 데에 실패함으로써, 대상을 헤겔적 의미에서의 ‘까만 밤’ 속에 남겨둔다(잘 알려져 있듯 그는 셸링을 비판하며 ‘까만 밤에는 흰소, 검은소가 구분 없이 까맣게 보인다’며, 즉자적 동일성을 넘어서는 대자적인 차원에서의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 까만 밤 속에서, 모든 같지 않은 것들은 매체와 질료의 차원으로 무차별하게 동일성으로 소급되어, 그 이상의 본질을 해명할 필요가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18] 그리고 이 모든 변화에는 보다 심원한 동학(dynamics)이 자리한다. 60-70년대의 이윤율 저하 경향에 맞선 자본의 공세가 성공을 거둔 후 나타나게 된 자본주의의 순수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 ‘후기자본주의’, ‘절대자본주의’등으로 불러온 것으로,[19] 금융부문의 비대화 및 국제금융시장의 통합 수준 증가, 해외직접투자의 심화로 요약되는 자본의 탈영토화-규제완화, 전방위적인 노조에 대한 공격, 그에 동반된 고용유연화와 구조조정, 국가의 복지예산 삭감을 비롯한 재정정책의 축소, 공공부문 및 재생산부문의 대대적인 시장화와 민영화 등으로 요약되는 일련의 대전환을 포함한다.

 

  이 속에서 경제적 자립의 이데올로기는 전에 없던 수준으로 확산 되었으며, 자산가/자본가들은 일체의 조정과 개입 없이 자본을 축적할 자유를 얻었고, 노동자들은 ‘공정하게’ 노동시장에 자신을 매매할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는 발전된 생산성과 이윤율 저하로 말미암아 더 많은 상품들이 사회적으로 소화되어야만 하는 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자본은 필사적으로 상품들 간의 임의적인 차이를 연출함으로써 인간들의 욕망을 전유하고, ‘소비주의’라 할법한 이데올로기적 실천을 심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기 드보르(Guy Debord)와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를 통해 웅변적으로 표명된 바 있다). 임의의 차이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상품의 세계 전반은 미학과 예술의 언어를 이용해 재편되었다. 동시에 문화산업에 의한 여가의 매개 역시 점차 심화되어갔다. 즉 제약없는 자본의 자유로 인해 극단적인 불평등과 아비규환이 펼쳐지는 와중에, 미학화/이미지화한 자본이 생산해내는 의사경험과 기억으로 인해(혹은 마르쿠제가 ‘허위욕구’라 부른 것을 통해) 무언가 다른 세계를 욕망하는 힘은 전멸에 가깝게 분쇄당하게 되었던 것이다.[20] 전체 세계를 조직하는 원리에 대한 분석과 논증은 점차 후퇴하기 시작하여- 이내 소멸하기에 이른다. 대대적인 탈정치화의 경향이 전 세계를 휘감고, 전체 운동은 비전을 상실하게 된다. 코제브(Alexandre Kojève)가 일찍이 ‘동물화’라고 명명했던 것이 심화되며 인간은 투쟁하기를 멈추고, 바디우(Alain Badiou)가 ‘세계 없음’이라 부른 상태에 도달한다.[21] 이 같은 상황은 60-70년대의 영미와 서유럽을 돌아 80년대의 일본을 거쳐 90년대의 한국에서 재연되게 되는데, 이 속에서 우리는 90년대를 기점으로 ‘식민지 반자본주의’ 내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등과 같이, 한국자본주의를 총체화하여 그 구체적 수준에서 사회구성체를 파악하는 흐름은 전무하게 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매개되지 않은 직접성 속에서- 분절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직접적인 시간이 그저 펼쳐져 있는 풍경이다. 이런 조건에서 대두되는 것이 바로 즉자적 현재 이외의 시간을 감지하지 못하는 ‘동시대’이며, 이미지를 초과하는 다기한 지향들과 배면의 논리들을 보지 못하는 ‘무빙 이미지’인 것이다. 즉 이들은 20세기의 유토피아적 정치의 쇠락 이후 나타난 탈정치화의 리듬에 조응한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총체화, 역사화에 대한 실패의 징후이며, 달리 말해 그와 같은 실패가 바로 ‘포스트 스펙터클’이 아니라, ‘무빙 이미지’로 동시대의 이미지 환경을 조망하도록 만드는 힘이라고 하겠다. 또한 그것이 바로 ‘BTS’,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 게임>, <지옥> 등이 현행의 이데올로기와 맺게 되는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들을 그 자체로 투명하게 긍정적인(positive)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22]

 

 

4. ‘영화’ 이후- ‘무빙 이미지’의 공장으로서의 OTT

 

  이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변화들이 관객 수용의 측면에서 어떤 결과를 야기하며 관철되고 있는지의 문제다. 앞서 말했듯 ‘무빙 이미지’로의 전환을 만들어낸 영화 내적 계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소는 엄숙하고 침잠을 요하는 의례로 작동했던 Kino를 비웃으며 등장한 포스트모던의 작인으로서의 미디어 장치들이었다(이는 김지훈 등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포스트-시네마’의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23] 그리고 오늘날 그와 같은 Kino 이후에 등장한 ‘무빙 이미지’를 집약하고 있는 웅변적인 장소는 바로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라 할 수 있다. OTT 플랫폼은 스마트 기기와 퍼스널 컴퓨터 등을 통해 언제 어느 때나 이미지를 현전시킴으로써- 전통적으로 TV와 비디오, CD, 컴퓨터 다운로드가 수행해왔던 Kino의 아성에 대한 위협에 그야말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을 만큼 익숙한 것이 되었으나, 봉준호의 <옥자>(2017)가 OTT를 통해 개봉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가늘게 명맥을 유지하던 영화적 체험을 완전히 확인사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Kino의 옹호자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예컨대 <탑건: 매버릭>(2022)을 둘러싼 톰 크루즈의 영웅적인 일화는, 이제는 낡아버린 옛 경험을 사수하고자 하는 경향이 남아있음을 알려주는 훌륭한 예시인데, 본래 감독과 사측은 영화를 OTT 플랫폼을 통해 배급하려 했으나 톰크루즈의 결사반대로 극장 개봉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경험에 관해 톰 크루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온라인 데뷔와 같은 것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죠. 절대로 말입니다.” 단지 영화의 배급 장소를 둘러싼 지엽적인 결정의 와중에 그는 왜 그렇게까지 단언해야만 했을까? 이유는 명백하다.

 

  “모두 함께 모여 있는 우리를 보십시오. (...)우리는 통일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다른 문화에 놓여있으며, 예술, 영화(cinema), 혹은 이야기(storytelling)에 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어떤 공동체로 함께 모일 수 있음으로 하여 우리는 통일되며, 공유된 체험 속에서 무언갈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 저는 언제나 관객을 사랑해왔습니다. (...)저는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데, 왜냐하면 무엇보다 제 스스로가 한 명의 관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개봉 주말에 뿐만 아니라, [관람이후에도]연이어 관객을 즐겁게 하고 참여시킬 수 있는 영화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와 같은 체험을 사랑하죠. 저는 단지 저 자신만을 위해 이와 같은 체험을 원하는 게 아닌데, 왜냐하면 이와 같은 체험을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24]

 

  여기서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이제는 완연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있는 ‘Kino’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무언가 다른 경험과 사유를 찾아 헤매는- 그가 생각하는 ‘관객’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거의 종교적이기까지 한 ‘영화적 체험’ 역시 마찬가지다.[25] 그래서 그가 최후의 관객이 될 것이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는 바, 발전된 기술의 사용을 거부하는 것은 마치 자본주의 초기에 기계를 부수고자 했던 노동자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듯, 맨손으로 둑을 막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초(hyper) 개인화되어가는 인간들의 관성으로 미루어보아, OTT를 통한 영화의 소비를 규제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는 것은 사실이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퇴행이 될 것이다. 외려 도처에서 소비함직한 ‘무빙 이미지’들이 넘실대는 오늘날의 조건을 인정한 채로, Kino의 종별성을 새로 재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근래 들어 다시금 확장되고 있는 IMAX상영, 혹은 그 이전의 <아바타>(2009)에서 정점에 이르렀던 3D 상영의 제안, 영화 장면 속의 이런저런 물리적 효과들을 영화관 내 기계장치로 재현하여 관객의 경험을 감각 수준에서 영화 내로 동기화하고자 하는 4D 상영 등은 모두 ‘무빙 이미지’의 시대에 Kino를 재구성하기 위한 영화 스스로의 필사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이는- 3D 상영의 경우 기술 수준에서는 20세기 초반부터 가능했으나,[26] ‘무빙 이미지’가 하나의 문제계로 대두되기 시작한, 그리하여 Kino가 위협받게 되는 80-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점차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다. 4D 상영 역시 80년대 중반 경을 기점으로 발전되기 시작했으니, 2000년대 이후로 영화관에 적용되어온 IMAX는 그와 같은 영화의 반항의 가장 최근 버전이라 하겠다. 즉 이와 같은 흐름은 일견 영화의 내적 요구와 무관하게 단순히 현재 도달된 기술 수준으로 가능한 환영과 스펙터클을 실험해보는 것처럼도 보이겠으나, 이는 명백히 영화의 위기감의 발로에서 비롯된 시도들인 것이다. 더불어 <탑건: 매버릭> 또한 의미심장하게도 IMAX를 동원한 영화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서사는 전달되며, 재미없던 것이 재미있어지는 효과를 가져다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는 사실상 필요 이상으로 크게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거대한 화면은, OTT플랫폼들이 으레 전달되는 스마트 폰/태플릿 PC/컴퓨터 모니터의 스크린을 통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감각을 전달해준다. 3D, 4D 상영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상 이와 같은 시도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영화관’에 가야 할 마지막 이유를 제공해주고 있다. Kino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혹은 불특정 다수의 인간들을 한 데 모아, 일정 시간 동안의 통제 속에서 어떻게든 하나의 꿈과 환상을 보게 만들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타협과 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이는 마치 동시대의 좌파들이 활동자금을 위해 굿즈를 만드는 타협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27]

 

  그러나 문제는 OTT 자체가 열어놓고 있는 관람의 조건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고, 따라서 OTT 자체가 의미하는 것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기술은 결국 사회적 변화의 본질적인 작인이자 원인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제 변화들이 매끄럽게 집약되어 나타나는 은유의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기술은 특정한 사회의 작동원리에 매개되어 현상하며, 제 아무리 투명하게 모종의 사태에 관한 원인을 자처하는 순간에조차 그 자체로 주어진, 자율적인 실체가 아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 깊이 침투한 SNS를 둘러싼 풍경들에서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SNS는 신문방송학과 문화연구 등에 의해 으레 책임 없는 관계와 발화들을 생산하는 원인이 되는 장소라는 십자포화를 받아 왔다. 실로 SNS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말들이 힘없이 흩어지며, 자폐적으로 공회전하거나, 무게를 잃는 장면, 그리고 그 구조적인 ‘타자의 얼굴 없음’과 익명성으로 인해 수많은 인간들이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으로 되는 듯한 장면들이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대상을 무기체의 수준으로 돌려놓으려는 경향으로서 인간의 죽음충동(death drive)을 이끌어내는 거대한 생산공장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90년대 초 ‘나우누리 통신’은 SNS에서 문제적으로 조명되는 주요 성질들을 대개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며 비슷한 관심을 가진 인간들이 서로에 대한 존중 속에서 실로 ‘소통’하는 풍경을 연출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SNS적 소통의 전사(pre-history)로서의 나우누리와, 동시대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양 극 속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사회이고, 그 거울상으로서의 인간이다.[28]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소비주의가 완연히 무르익은 이후의 파편화된 인간들은 서로에게 이미 타자이고 적이며, 알 수 없는 익명이다. 재생산과 생명 전체의 극심한 위협 속에서, 비대한 자기애와 자기 현전의 감각, 타자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경계심 이외에 남은 것은 없다. 그와 같은 인간의 역사적인 집단적 정신구조의 양태 및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동시대의 SNS는 그저 순수한 형태로 드러내는 것이다.[29] 즉 현재의 사회적 관계를 그대로 둔 채 SNS를 제거하는 것으로는, 으레 SNS의 문제로 소급되기 마련인 여러 부정적 현상들은 그대로 지속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OTT 역시 현재의 사회적 관계를 집약하는 하나의 은유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

 

 

5. 경험부재의 후기자본주의 속 경험 부재의 OTT: ‘손안에 있는’- 이미지의 트레일러화(trailerization)

 

  이렇게 볼 때- OTT는 동시대 자본주의가 직조하는 매개의 체계의 최종적 형상을 보여준다. 인터넷을 통해 어디에나 나타나며, 알고리즘을 빌어 자동적으로 영상들을 카테고리화 하여 소비자의 타임라인에 제시하는 OTT의 양상은- 후기자본주의/포스트모던에 이르러 형성된 전지구적인 상품과 화폐의 네트워크 및 자기지시적으로 운동하는 자본의 은유이다. 오늘날 완성된 세계적 상품의 연쇄 속에서 주체가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의사경험을 마주한 채 (모더니즘의 고전적 주체에게 요구되었던 바의) 별도의 사유와 반성, 번민을 필요로 하지 않듯, OTT 앞에서 주체는 숙고하거나 망설이거나, 연구하거나, 결단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중단 없이 투자하고, 소비할 것을 명령하듯- 그들은 중단 없이 볼 것을 강요하며, 아주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동원하여 그렇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쏟아져오는 한 다발의 무더기를 마치 먹방 유튜버가 그러하듯 맹목적으로 우겨넣는다. 톰 크루즈가 희망을 거는 바의 ‘영화적 체험’을 되새김질할 틈도 없이, 비슷한 일련의 영화, 나아가 기획 시리즈물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밈, 스트리머 방송, 동물 영상 따위가 알고리즘을 타고 뒤이어 밀려들어 온다. 이것이 바로 톰 크루즈가 기대하는- 영화적 체험을 향유하는 ‘관객’이 동시대의 관성 속에서 역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체험은 언제나 반성된 체험이다. 주체에 의해 다시금 반성되지 않은 사태는 감관에 맺힌 무의미한 표상으로서 휘발된다. 체험과 경험은 언제나 반성(헤겔 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념’)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인바, OTT에서 집약되는 사회의 원리 속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어떤 체험도 없이- 영화라기보다는 일련의 이미지들의 집적과 연쇄로서의 ‘무빙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이는 유튜브를 통해 어떤 영상들을 접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곧바로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도 소급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수많은 것을 보았으나, 동시에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의 관객은 유유히 뒷짐을 지고 거닐다 꿈의 상연과 다른 경험을 위해 Kino에 입장하는 고전적 관객이라기보다는,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철창에 갇혀 푸아그라를 생산하기 위해 목구멍에 깔때기가 삽입된 거위와 같은 수준으로 전락한- 동물화 된 관객이다. 이에 조응하는 관람 방식이 바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현전하는 이미지에 대한 ‘슥 보기; 곁눈질’이라는 전연 새로운 양태의 수용이다. 이는 이미지를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관람’과는 정반대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면서, 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서, 길을 걸으면서, 사람을 만나 잠깐 정적이 흐를 때 일순간 감관에 맺혔다 사라지는 대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시각적 표상 일반의 운명이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이미지의 전체 세계는 완전히 ‘손안에 있는’ 대상이다. 그것은 존재물음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숙고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이미 도구화된 채로 손안에 주어져 있는 대상인 것이다. 이미지를 ‘눈앞에 세워’, 그것을 사유의 대상으로 성립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미지의 손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자본은 더더욱 이미지를 매개하며, 따라서 파괴되는 것은 동시에 이미지의 존재 자체이다. 그리하여 ‘시각적인 것’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그에 대한 체험은 없다. 수없이 다기한 존재자로서의 이미지들이 ‘무빙’하고 있지만, 그 존재 자체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오늘날의 무빙 이미지; 영상 그 자체의 측면에서도 형식화된다. OTT를 통해 편재하는 문화 상품(혹은 ‘일시적 자극제’)의 수열적 체계와 더불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영상의 조직화 방식은 '숏폼(short form)'이라 불리는- 극단적으로 짧은 구성으로 된다. 이 같은 경향은 유튜브의 쇼츠(short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릴스(reals), 틱톡의 15초 분량의 압축 영상의 소비 등을 관류하는 것으로, 이 ‘무빙 이미지’들의 임무는 그야말로 일말의 반성적, 인지적 계기도 지닐 수 없도록 구조화된 휘발성의 표상들을 개틀링건(gatling gun)과도 같이 발사하여 우리의 감관을 치고 곧바로 빠져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영화적 적용은, 유튜브에서 범람하는 영화 전체의 트레일러화(trailerization)라고 할 법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 트레일러화 된 무빙 이미지들은 수많은 형식주의자들이 예찬해마지 않는- ‘포스트 인터넷 아트’가 기대는 샘플링과 리메이킹의 방법론에 근거하여 현재 여러 밈들과 뒤섞여 조직되는 추세에 있다. 그리하여 무수한 유튜브 클립들은 작위적으로 영화를 파편화하여, 전체적 완급과 깊이 없이 재편성한다. 무엇보다 지루해선 안 된다는 것이 이 같은 트레일러화된 무빙 이미지의 철칙이기에- 각 이미지들은 그 유기적인 전체 구조에서 탈각되어, 오로지 관객의 주목을 이끌 수 있는 방식으로 배열되는 것이다. 관객은 그 조차도 지루하다고 판단되면 영상의 타임라인 바를 조정함으로써 무수한 세부를 건너뛰어 원하는 장면만을 추려 스스로의 감관에서 증발시켜 낸다. 이때 관객들은 수동성을 넘어- 자발적으로 무반성의 조건에 탐닉하고자 한다. 애초에 객체로부터 부과된 수용방식이 하나의 자연이 된 것이다. 이 속에서 아마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일 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좋다.

 

  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들이 바로 ‘동시대’와 ‘무빙 이미지’의 역사화된 문제계를 형성하는 바이지만, 이는 영화를 비롯한 이미지의 차원에만 귀속되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 시대에 음악의 청취가 조직되는 방식 또한 일견 상이하지만 이와 동일한 기제에서 나타나는 형식의 단절을 표지하고 있다. 우선 유튜브를 비롯, 수많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OTT가 무빙 이미지를 유통시키는 방식 그대로- 알고리즘의 ‘개념’을 통해 선별된 음악들을 쏟아낸다. 그들의 개념의 체계가 심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청중은 개념 부재의 직접성 속에서 무방비로 음악을 소비당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알고리즘을 통한 음악의 연쇄적 배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개개인을 투자든, 인적자본의 향상이든, 생애주기의 관리이든, 어떤 ‘외부’의 추구도 없이 자본을 축으로 하여 운동하도록 꿰뚫어 조직해버렸듯, 정확히 상이한 음률들을 자본이라는 목적인에 맞춰 운동시키기 위한 것이다(폭격과도 같이 쏟아져 내리는 음률의 연쇄 속에서 동시대의 헤게모니적 기업형태로서의 IT, 플랫폼 기업들은 두둑하게 배를 채우며, 업로더들은 그에 기생하여 낙수효과를 누린다). 자동재생을 통해 쏟아져 오는- 취향에 맞는 음악들이 인도하는 무한의 향유 속에서, 그 각각의 음악의 배경과 맥락, 작가를 알고자 하는 인지적 의지는 구조적으로 소멸한다. 압도적인 양으로 덩어리진 채 이어지는 청취의 사태 속에서, 청자는 그 각 이름을 탐구하며 인지적 실천을 수행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하이데거 식의 표현을 빌자면, 음악 역시도 ‘눈앞에 있기’를 멈추고, ‘손안에’ 휘감겨 들어오는 대상이 된다.

 

 

6. pov: 유비쿼터스 사운드(ubiquitous sound)와 초월론적 주관의 바다

 

  여기서 나타나는 지배적인 음악의 구조화 방식은- 임의의 플레이 리스트 시리즈를 구성하여 추상적인 제목을 붙이는 식의 경향이다. 예컨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운명)>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한 천사’와 같은 두루뭉실한 분위기의 주제어로 포박되어 다른 여러 음악들과 혼성적으로 뒤섞인다.[30] 이는 영미에서도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이땐 ‘pov: you're a heartbroken witch(시점: 당신은 비탄에 잠긴 마녀이다)’와 같은 주제어로 대강의 우울한 단조풍의 노래들이 난잡하게 뒤섞여 있게 된다.[31] 물론 이와 같은 무맥락성은 음악을 눈앞에 세웠을 때만 보이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 플레이 리스트의 내용은 미국의 작곡가 테일러 데이비스(Taylor Davis; 1987-), 프랑스의 작곡가 알렉상드르 디플라(Alexandre Desplat; 1961-), 폴란드의 작곡가 크시스토프 코메다(Krzysztof Komeda; 1931-1969) 등에 이르기 까지- 각 작자의 국가, 출생년도, 성별 등이 모두 상이한 단위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로서 상이한 역사와 맥락을 지닌 개개의 음악들은 유사한 일련의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포집되어 한 평면에 나열되게 된다. 이는 유튜브가 개척한 전적으로 새로운 장르라 할 법한 것이다. 여기서 현전하는 것은 염연히 말해 음악적 청취의 ‘경험’이라기보다는 어떤 분위기에 취하고자 하는 그때그때의 주관이다. 영미식 작명법에서 이는 보다 노골적으로 나타나는데, ‘pov: you're a mermaid in love’, ‘pov: you're slowly going insane’과 같은 식으로 으레 이와 같은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에 따라붙는- ‘시점’을 표현하는 약어(acronym)인 'pov'는 그것이 1인칭의 편향된 시점에서 재구성된 것임을 적시하며, 나아가 그와 같은 편향된 시점을 체화하여 들을 것을 명령한다.[32] 이때 연속재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일관된 하나의 주제 아래 작가주의적으로 구성된 한 뮤지션의 앨범, 혹은 레퍼토리, 또는 (동남아시아, 라틴 등) 지리적 권역의 ‘음악’이 아니라, 반성될 필요 없이 ‘분위기’라는 피상적이고 무차별한 동일성으로 소급된 채 덩어리져 오로지 정동(affect)만을 상대하는 건조한 ‘소리’이다. '무빙 이미지’라는 식의 호사스러운 이름으로 수식해보자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유비쿼터스 사운드(ubiquitous sound)’이다(물론 그것은 분석되고 비판되어야 할 역사이지, ‘무빙 이미지’의 주창자들의 생각처럼 존재론적인 실체는 아니라는 점을 덧붙여야겠다. 즉 우리는 ‘하이브리드-무빙 이미지’ 따위의 이름을 붙이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것 자체의 제 조건을 역사화해야 한다). 이로부터 가라타니 고진이 일찍이 하루키의 작업에서 읽어냈던 것과 같은 초월론적 주관의 범람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33]

 

  무빙 이미지에서부터 유비쿼터스 사운드에 이르는- 위와 같은 시/청각적 수용에서의 거대한 전환은, 변증법적으로 보았을 때, 점차 반지성적인 스탠스를 당당하게 긍정하는 대중들의 몰염치한 경향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이동진의 레토릭-‘명징과 직조’를 둘러싼 어마어마한 반감에서부터, ‘봇물터지다’라는 메타포를 둘러싼 소요들을 거쳐, ‘심심한 사과’를 둘러싼 논쟁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이들에게 ‘기본 소양’이라 할 법한 것이 부재한 듯 보이는 사태를 마주한다. 일견 이는 사회 전반적인 문해력 저하의 문제로 보일 수 있으나, 그와 같은 맥락화된 관용구들에 대한 독해력의 불균등함은 언제나 있어왔던 문제라는 점에서, 여기선 외려 ‘알지 못하는 것’을 대하는 태도가 보다 결정적인 쟁점이라 하겠다. 명실상부 오늘날의 인간들은 자신의 인식지평을 뛰어넘어 있는 것을- 수용하고 극복하기보다는, 알지 못했던 것 일체에 관해 면역학적 거부를 보이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이는 ‘미지의 앎’, ‘미지의 타자’, 나아가 ‘미지의 세계’ 일반에 대한 태도를 관류하는 것인데, 이유인즉 무엇보다 인간들이 실제 현실 속에서 어떤 유대와 연결도 없이 파편화된 채 자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가리지 않고 이뤄진 자본의 총체적인 반격 속에서 구조화된 ‘홀로 있음’은 주체 스스로가 그것을 내면화하는 지경으로 발전해왔다. 그리하여 개개인의 협소한 ‘앎’을 초과하는 것은 그 자신의 동물적인 즉자존재의 지평 내에서 고고하게 자족하고 있는 그들에게 크나큰 위협이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회적 실재의 세태와 평행하여- 우리가 앞서 살펴봤듯 오늘날 어떤 실재와 공명하며 자신이 알지 못한 감각과 의미를 전달해줄 미지의 문화적 대상은 없게 되는 것이다. 동시대의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분리시키는 동시에, 모든 것을 ‘손안에 있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극단적인 분리 속에서 ‘내게’ 알려진 것, ‘내가’ 익숙한 것들 속에서 보고, 들으며, 행위한다(그리고 스스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믿는다). 이러한 관성 속에서 그와 같은 무의미한 반복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사유와 인지의 계기들은 지워져야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SNS에서 웅변적으로 나타나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 및 알고리즘에 의한 폐쇄적인 자기지시성을 통해서도 예표되는 경향으로서, 그런 점에서 동시대의 인간들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의 주체성을 변화시키는 바의’ 사태란,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공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동시대에는 부재하는 실천으로서의 ‘반성’의 실행과, 마찬가지로 부재하는 ‘체험’과 ‘경험’의 세계로의 입장(entrance)은 거부되며- 이는 좁은 우리(cage)에 갇힌 돼지가 이내 적극적으로 우리 외부의 일체의 현상과 존재들을 외면하는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나르시시즘은 최종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징후이지만, 오늘날의 인간들이 현실을 버텨내는 유일한 존재방식이기도 하다. 공동의 세계 없이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될 때, 그리하여 세계가 내게 어떤 환대의 표정도 짓지 않을 때, 생존 자체가 유일한 목적이 될 때, 자신의 리비도를 스스로에게 정향시켜 자폐적일지언정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시금 변증법적 연결을 제시해보건대, 이것이야말로 2010년대 이후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여-)전세계적인 화두가 된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문제계의 실질적 원인이 된다. 아무도 연관 짓지 않는 것이지만, 실로 자본주의의 물화의 심화에 잇따른 삶의 파편화와, 그 속에서 고고하게 실체화된 자족적인 초월론적 주관이야말로, 숙고와 연구, 반성을 통해 도달할 ‘진실’이랄 것을 제쳐두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만드는 가장 규정적이고 실질적인 힘인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무빙 이미지’-‘Kino의 소멸’-‘OTT’-‘트레일러화’-‘동시대’-'pov'-‘유비쿼터스 사운드’-‘반지성주의’-‘SNS’-'탈진실'-‘초월론적 주관’ 등에 이르는 다기한 맥락의 개념들을 일거에 관류하는 필연적이고 내적인 전체 지평을 감지할 수 있다. 이들은 결국 후기 자본주의의 실체로서의 신자유주의와 소비주의가 만들어낸 특정한 시간대에 대한 주체의 반응이 현상하는 장소들인 것이다.

 

 

나가며: 변화하는 시간으로서의 콩종크튀르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들 속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 ‘손안에 있는 것’들을 ‘눈앞에 있는 것’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어떻게 ‘손안에 있는’ 직접적인 것들을 다시금 매개된 것으로,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인지’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즉자적 자극의 무의미한 연쇄를 넘어 반성될 수 있는 ‘체험’과 ‘경험’을 생산해낼 것인가? 어떻게 ‘포스트-스펙터클’ 시대의 작인으로서 식민화된 이미지와 소리를 구제할 것인가? 촘촘해진 자본주의의 (비)경험의 그물망 속에서 존재자조차도 될 수 없이 짓눌린 채 허덕이는 -나를 포함하여- 동물화된 이들을 어떻게 다시 존재하도록 하여, 유일한 존재물음의 담지자- 본질적 의미의 ‘인간’으로서 벼려낼 것인가? 그리하여 어떻게 그 스스로의 삶/존재방식 자체와 마주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도록 할 것인가?[34]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아직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의 지침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하나의 잠정적 방향으로서- 자본주의가 조성하고 있는 자연화된 범주와 사태들을 철저히 역사화하여, 불변할 것처럼 보이는 ‘현재’를 하나의 ‘역사’로서 조명하는 작업이 삶과 세계의 전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대원칙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여기에 오늘날의 비판적 활동가들과 지식인들, 예술가들의 임무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갈음하고자 한다. 본 작업은 본질적으로 그와 같은 시도를 근래 영화와 미술의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징후들을 경유하여 상론한 것이었다. 일찍이 손택(Susan Sontag)이 지적했듯, 특정한 사태에 접근하는 데에 있어- 서사(텍스트)는 연대하게 하며, 이미지는 소비하게 한다. 그렇다면 ‘무빙’이미지는 무엇을 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주체들과 관계하는 본질적인 방식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오늘날의 전체 세계지평을 관류하는 논리를 중심으로 거칠게나마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된- 자폐적이고 촘촘하며 완전해 보이는 지배의 체계에 관해, 지레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콩종크튀르란 아날 학파의 브로델이 제기한 개념으로, 예컨대 자본주의와 같이 장기지속하는 구조화된 시간대 속에서의 결절점으로서, 그에 매개된 채 순환하는 한 차원 아래의 시간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더니즘 역시 하나의 콩종크튀르였고, 오늘날의 자폐적인 문화적 연쇄의 계기로서 우리가 살펴본 제 경향들과, 그를 관장하는 시간대로서의 포스트모던 역시 동시대의 특정한 사회적 실재 속에서만 나타나는 역사적인 현상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렇게 그야말로 자연화한 문화적 대상들 속에서 자연이 아니라, 역사를 볼 때, 우리는 가능한 개입의 공간을 얻게 된다. 후기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속에서 초토화된 존재와 경험, 나아가 예술의 회복을 위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역사를 살아내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리하여 아직 오지 않은- 도래할 역사 속에서는 다시금 우리가 연결되어, 하나의 새로운 세계에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1] 본 원고는 한국영상문화학회의 2022년 9월 17일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을 보충한 것임을 일러둔다.

 

[2] “상상적 아시아 Imaginery Asia." 아트바바. 2017. https://url.kr/tsjmlx

 

[3] Adrian J. Ivakhiv. Ecologies of the Moving Image: Cinema, Affect, Nature. (Ontario: Wilfrid Laurier University Press, 2013). p.vii. 강조는 인용자.

 

[4] 가까운 사례로는, 사실상 터미네이터라는 극장 영화를 통째로 가져와 더빙만 새로 입혀 <미러의 미러의 미러>(합정지구, 2018.5.25-6.24)전시장에 배치한 권용만의 <페미네이터: 재기의 날>(2018), 혹은 전시 <지속가능한 미술관>(부산현대미술관. 2021.5.4-9.22)의 한복판에 소환된 기 드보르의 실험적 다큐멘터리 영화 <스펙터클의 사회(La société du spectacle)>(1973)을 떠올려볼 수 있고, 굳이 영화 감상의 조건을 염두에 두지 않은, 하룬 파로키의 작업들을 ‘스크리닝’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케이스, 혹은 갤러리에서 첫 번째로 상연된 에세이 필름 설치 작업이 <DMZ 영화제>, <네마프 대안 영화제> 등에서 스크리닝 되는 케이스를 떠올려 볼 수 있겠다.

 

[5] ‘Kino’란 영화 및 그 장소로서의 영화관을 아우르는 독일어/러시아어로서, 다소 협소하게 영화 예술만을 가리키는 ‘film’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한편 고전적인 ‘Kino’의 몰락은 2000-2010년대의 (스마트)폰 보급으로 보다 돌이킬 수 없이 가속화되었다고 하겠다. 이 같은 경향은 오늘날 (고전적)영화적 경험을 잠식한 OTT에서 웅변적으로 나타난다.

 

[6] 예컨대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을 존재론적인 단위로 셈하며, 시각적인 것의 본성에 속하는 ”정지상태(stillness)“가 어떻게 운동(청각)적인 것으로서의 "무빙 이미지“로 현상할 수 있는지를 나열하는, 2000년대 초반에 제기된 다음과 같은 작업이 대표적이다. Sean Cubitt. "Visual and Audiovisual: From Image to Moving Image." Journal of Visual Culture. Vol 1(3). 2002. 여기서 ‘무빙 이미지’란 하나의 주어진, 도달 가능한 실체로서 사고되고 있을 뿐, 그 범주 자체에 대한 메타적 반성은 부재한다.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90-2000년대의 징후적 개념에 올라탄 것으로 보이는 김지훈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동시대 매체의 혼종성 속에서 나타나는 인식론적 범주로 ‘무빙 이미지’를 호명하는 데에 자족하며, 유물론적인 수준에서 그들을 역사화하는 데에 매번 실패한다.

 

[7] 페나키스토스코프란 벨기에 물리학자 요제프 플라토(Joseph Plateau)와 오스트리아의 기하학 교수 지먼 슈탐퍼(Simon Stampfer)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각 동작의 부분들이 나뉘어 새겨진 원판을 돌리면 대상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환영장치이다. 조이트로프는 영국의 수학자 윌리엄 조지 호너(William George Horner)에 의해 발명되었으며, 세로로 길게 난 구멍들이 뚫려있는 원통의 안쪽에 분절된 동작들로 이뤄진 그림을 넣어 회전시킴으로써 운동을 재현한다. 1825년 영국의 의사 존 에어튼 패리스(John Ayrton Paris)에 발명된 더마트로프(thaumatrope)를 기원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는 본질적으로 움직임을 현전시키는 장치는 아니었다.

 

[8] ‘단독성의 미학’이란 말 그대로 오늘날의 작품이 연속적인 주제와 방법론, 체계에서 비롯되기보다는, 명멸하는 사건들을 일시적으로 조합하는 단속적인 실천들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프레드릭 제임슨. "단독성의 미학," 박진철 역. 『문학과사회』 제 117호, 2017.

 

[9] 그리고 여기에는 온갖 광고들에서 관측 가능한- 상품에서 파생된 의사경험들, 이미지 자체를 기억과 방송국, 배급사, OTT 플랫폼 등의 문화산업의 기지가 있다.

 

[10] OTT란 ‘over the top’의 약어로, 컨텐츠의 접근에 셋톱박스를 필요치 않는 Youtube, Netflix 등의 스트리밍 회사를 가리킨다.

 

[11] 김지훈. “포스트-미디어 시대의 하이브리드 무빙 이미지들.” 『기초학문자료센터: 2014년 신진연구자 지원사업 보고서』. 2016. 여기서 그는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기존 매체들(사진, 영화, 비디오) 사이의 경계 와해와 기존의 장르적 틀을 넘는 새로운 미적 구성물들의 출현을 '포스트-미디어(post-media) 시대'의 특징들로 규정하고, 이러한 미적 구성물들로서의 '하이브리드 무빙 이미지'들을 분류하고 그 존재론적 함의들을 이론화“할 것을 천명하지만, 그의 ‘존재론적 함의’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한갓된 형식주의적 진술에 머문다. 이는 특히 이 연구프로젝트의 결과로 제시된 다음의 작업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김지훈. “정지와 운동 사이의 하이브리드 무빙 이미지 : 다비드 클레르부(David Claerbout)의 비디오 설치작품.” 『현대미술학 논문집』. 제 19권 1호. 2015. pp.121-166. 특히 그가 존재론적 함의를 규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136-140쪽을 참고하라.

 

[12] Jihoon Kim. "Postinternet Art of the Moving Image and the Disjunctures of the Global and the Local: Kim Hee-cheon and Other Young East Asian Artists." CLCWeb: Comparative Literature and Culture 21.7, 2019. p.3.

 

[13] Ibid.

 

[14] 이와 같은 ‘동시대’에 대한 접근은 서동진의 다음 논의에 빚지고 있음을 밝힌다. 서동진. 『동시대 이후: 시간-경험-이미지』. 현실문화, 2018. 12-13.

 

[15] 이는 1961년의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에세이 “Modernist Painting"에서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Clement Greenberg. “Modernist Painting" Arts Yearbook 4, 1961.

 

[16] Terry Smith. "Contemporary Art". In Oxford bibliographies in Art History. 30 Jan, 2014. 스미스에 따르면 1920-30년대, 이어 60년대에 주변적인 빈도로 사용되어왔던 'contemporary art'는, 80년대 이후로 폭발적인 각광을 받아왔다.

 

[17] Oliver Grau. "New Media Art". In Oxford bibliographies in Art History. 26 May, 2016. 여기서 올리버 그리우는 ‘뉴미디어 아트’가 "핵티비즘(hacktivism)과 전술적 미디어와 같은 예술영역과 액티비즘의 실천과 더불어, 가상예술(virtual art), 소프트웨어 아트, 인터넷 아트, 게임 아트, 글리치(glitch) 아트, 텔레머틱(telematic) 아트, 바이오 아트, 컴퓨터 애니메이션, 인터랙티브 아트, 컴퓨터 그래픽"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적시하고 있다.

 

[18] 이 까만 밤에 모든 소를 검게 보며 그것이 소의 본질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지훈이다. 그의 작업은 여러모로 인류학적으로 훌륭한 샘플이 되어준다. 이 지면을 빌어 모든 이들이 그의 글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적 오류를 미연에 방지해 볼 것을 권한다.

 

[19] 다음의 글들을 참고하라. John Bellamy Foster. “Absolute Capitalism,” Monthly Review vol. 71, no. 1. May 2019. pp.1-13.; Étienne Balibar. “Absolute Capitalism.” in William Callison and Zachary Manfredi(Eds). Mutant Neoliberalism: Market Rule and Political Rupture.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20). pp.269-290.

 

[20] 그리하여 우리는 더없이 안온하게 관리되는, 마치 축사(cage)와도 같이 풍족한 세계 속에서, 어마어마한 사회적 격차와 실존적 고립,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고통을 겪는 아이러니를 마주하게 된다.

 

[21]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주의 성격에 대한 연구, 사회구성체 연구가 잘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본의 간지(cunning)이라 할법한 역설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오늘날 한국의 좌파는 모든 데이터 접근성과 지적 자유의 측면에서 80년대 후반을 앞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성체 논쟁을 재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22] 예컨대 <기생충>을 부정적(negative) 지평에 놓는 것, 그리하여 <기생충>을 제대로 관람하는 일은, 아무 말 못 한 채 우울에 빠져드는 것, 혹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자 책을 펼치고 거리로 나가거나, 사람들의 절규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력, 해외에서의 화려한 수상 경력에 대한 실정적인 성과들에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영화가 하필이면 한국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23] 실로 Kino는 현대인의 꿈과 소망, 환상이 상연되는 일종의 신전처럼 작용함으로써 제의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어두운 곳에서 불특정 다수와 함께 하나의 이야기, 장면들을 뚫어져라 보며 정신을 집중/고양시키고- 나름의 깨달음과 답을 얻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종교적 체험의 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나름의 경건함을 조건으로 하여, 위대한 모더니즘의 작가주의적 시도들은 그들의 형식을 통해 어떤 ‘개입’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가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상연될 것인지에 관해서조차 완전히 통제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작가주의가 개입할 공간은 구조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24] Ryan Leston. “Tom Cruise Refused to Allow ‘Top Gun: Maverick’ to Debut on Streaming.” Imagine Games Network. 21 May, 2022. https://me2.do/xSn08Jvh 강조는 인용자.

 

[25] 물론 <탑건: 매버릭>의 서사구조는 NATO에 반하는 세력에 폭격을 가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군인들의 희노애락을 휴머니즘적으로 조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 제국주의를 용이하게 작동시키는 장치로 기능할 것이 명백하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26] 물론 1915년경부터 마련되어 있었던 3D 상영이 보편화되지 못한 데에는 비용과 제도의 문제 또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큰 고려사항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유효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면 어떻게든 투자, 개발, 상용의 단계를 거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27] 이처럼 감각지각의 충격을 축으로 재편되어 가는 근래의 영화 환경을 두고, 서동진과 같이 그것을 금융화된 자본주의 속, 경험 부재의 세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전치된 보상행위로써의 의사경험으로 독해하며, 이로부터 “신경학적 리얼리즘”, 매개되지 않은 직접성에의 찬미를 읽어내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곧 일민미술관에서 발행되어 나올 『10시간 총서』(워크룸, 2022; 근간예정)의 “쇼크의 미학: 금융화 이후의 시각예술”을 참고하라.

 

[28] 그와 같이 변화된 세계의 논리는 동시대의 유년기 주체들에게서 놀랍도록 순수하게 집약되어 나타난다. 폐지 줍는 할머니를 향해 “냄새나는 거지”, 행복주택 혹은 빌라에 사는 이들을 향해 “휴(먼시아)거지, 빌거지”, 부모 월급이 200만 원대인 친구를 향해 “200충”, 교사를 향해 “X나 편하게 매달 돈 따박따박 받아가네” 등 근래 들어 쏟아져 나오는 초등학생들의 윤리의식 부재, 타자배려의 부재, 맹목적 공격성에 대한 충격적인 보고(report)들은 오늘날 사회적 이성의 인격화이자 화신(incarnation)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청소경비노동자들을 고소한 대학생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이다.

 

[29] 이 점은 SNS가 각 사회구성체의 구체적인 맥락들을 통해 전연 다른 쓰임을 갖게 된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2011년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적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SNS는 그야말로 ‘혁명의 미디어’로서 맥락화 되었다. 그러나 정보의 규제가 덜하며 사회적 삶의 전체가 물화된 대개의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SNS는 외려 ‘혁명의 걸림돌’처럼 나타나게 된다.

 

[30] 예컨대 ‘일상의 효정’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업로더는 여러 작가들의 음악을 모아 한데 뒤섞어 다음과 같은 식의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한다. ‘데자뷔, 괴물 PLAYLIST: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마왕 PLAYLIST: 아버지, 아버지, 지금 그가 날 붙들어요.’; ‘PLAYLIST: 나는 익사 중인데 너는 물을 설명하고 있어.’; ‘PLAYLIST: 하지만 우리, 봄이 오면 죽기로 했잖니.’

 

[31] Selena. "pov: you're a heartbroken witch." Online video clip. Youtube, 2 Sep 2021. 7 Sep 2022

 

[32] ‘pov’는 카메라의 뷰 자체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촬영되는 기법을 의미하기도 하며,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틱톡(TikTok) 등의 무빙 이미지 플랫폼에서 각광받아온 형식이기도 하다.

 

[33]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가라타니 고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풍경-『1973년의 핀볼』.” 『역사와 반복』. 조영일 역. 도서출판 b, 2008.

 

[34] 이는 하이데거적 실존주의/현상학의 문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이와 같은 실존주의의 테마가 실질적으로 달성, 해소될 계기를 이미 선취하여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란 근본적으로 하이데거적 의미에서의 존재자의 탈은폐를 통한 존재의 현전이 가능해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하이데거의 문제계를 형성하는 ‘근대’로의 이행과 더불어 심화된 로고스 중심주의와 실증주의, 기술과 예술의 분리는- 탈은폐, 존재의 드러남을 저지함으로써 인간의 사유를 구조적으로 존재자에 대한 천착에 고착되게 하나, 기실 이와 같은 ‘근대’를 지탱하고 관류하는 구체적인 목적인은 바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이데거가 ‘존재망각의 역사’로 서구의 역사 전체를 요약했던 것은- 하이데거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음에도 불구, 그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속의 한 인간으로서 역사를 소급해낸 데서 나온 결과였다고 해도 좋다(그리하여 그는 그 모든 근대적(자본주의적)퇴행을 어떤 방식으로든 일거에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나치에게 왜곡된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 연장에서 그의 논의와 더불어, ‘post-주의 내지 탈근대’류의 논의들이 실질적 의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선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가는 경향이 있는 그들의 비판 대상을 ‘근대’에서 ‘자본주의’를 향하도록 전유해야 한다. 한편 역으로, 실존주의적 테마는 마르크스주의의 실험이 ‘인간의 얼굴’을 하도록 보조하는 유용한 보충제가 되어줄 수도 있다. 요컨대 위대한 현실사회주의의 실험 이후 그들이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그리하여 동시대의 좌파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결국 해방된 개인들이 존재의 드러남 속에서 스스로의 본질을 자유롭게 향유하며, 그에 충실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방된 세계에서는 모두가 존재물음을 마치 호흡처럼 실천하는 실존주의자인 동시에, ‘현실의 모순을 지양하는 현실의 운동’의 주체로서 공산주의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합의된 사실이기도 한바, 비록 언어는 다를지언정 ‘21세기 사회주의’를 둘러싼 마르크스주의 재구축 과정에서는 (실존주의/현상학의 축이기도 한) 주관성의 해방에 대한 강조를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실존주의/현상학과 마르크스주의의 관계에 대한 이 같은 착상은 서동진과의 대화에 빚지고 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