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라는 에코챔버를 부수고 싶다는 미스테리한 욕망: 최근 관람한 두 개의 전시를 경유하면서

0. 어떤 의심

 

  작가가 그린 그림은 어떻게 어느 한 시절의 특정한 풍경으로 독해될 수 있는 것일까? 그 시절의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이 봤을 때, 그 그림이 실제로 꽤 닮았기에? 아니면 작품의 제목이며, 작품의 제작연도와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작가의 이력이 근거로 작동하기에? 하지만 이걸로 정말 충분한가? 이것은 어째서 자연스러운 것이 되는가? 작품에 대한 인식과 그 조건에 관해서라면 묘사의 차원에서만 아니라 표현의 측면에서도 계속 질문할 수 있다. 어느 한 영상 작품이 선보이는 이미지는 어째서 차별에 맞서는 저항(의 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근거 짓고 정당화할 것인가? 그런데 이것이 재현/미메시스란 개념을 벗어나 탐구될 수는 없는 것인가?

 

  이 글은 내가 원고 청탁을 받은 이후로 관람한 두 개의 전시, 부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전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22.7.15.-23.3.12)와 경남도립미술관의 《도큐멘타 경남II - 형평의 저울》(22.7.15-.10.2.)이 공통으로 적용하고 있는 아카이브 형식에 대한 어떤 인상을 곱씹어보는 글이다. 이 인상이라는 것은 전시를 보기 전에도 움트고 있던 것으로 대략 다음과 같다.

 

  (1) 과거사/현재사에 대한 단순 ‘저장’의 의미를 넘어서, ‘복원’ 혹은 ‘발굴’을 수행하는 아카이브 전시와 문화예술 분야의 프로젝트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그러한 경향성에 대한 비평적 검토의 작업 역시 조금씩 축적되고 있다.

 

  (2) 그 가운데서 비평적 검토의 작업은 덫과 같은 것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 같다. ‘미시사’, ‘잊힌 기억과 그 복원’, ‘역사에서 소외된 것’, ‘재현/재현불가능성’, ‘소수자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등의 개념과 언어를 제시하면서,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야 할 주제, 대상, 사건이 시의 적절하게 제시되었다거나 혹은 적합한 제시에 실패했거나, 실패했다면 그것이 필연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3) 이것이 덫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결국 아카이브 행위의 주체 혹은 대상이 되는 주체의 문제로 한정되어 논의된다는 것이고, 또 특정 사례의 좋고 나쁨 즉, 개별에 대한 유의미함과 한계에 관해 논해질 뿐, 아카이브라는 형식이자 방법론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을 삼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그저 유행을 양산할 뿐인, 키치와도 같은 레트로 문화산물로 평가하는 동시에, 같은 방법론을 사용했지만, 맥락이나 메시지가 다르다면 어떤 전시나 프로그램은 유의미하다고 평가되는 세계를 만든다. 그러니깐 어떤 관점에서, 어떤 목소리로 발화하는가, 즉 얼마만큼의 급진성/정치성을 발휘하고 있는지가 결국 중요해지는 것이지, 아카이브 행위 전반에 관한 방법론은 베일에 가려진다.[1]

 

 

1. 에코챔버[2]를 부술 각오

 

  나는 아카이브 절차와 형식을 적용하는 수많은 전시에서, 마땅히 해야 할 말(그리고 이것이 사람들마다 각자 상이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을 제대로 해내는 전시를 볼 때면 반갑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사례로 삼고 있는 두 전시는 모두 훌륭하고 좋은 전시라 할 수 있다, 큐레이터인 내가 본 받아야 함. 또 어떤 전시는 가보지 못해도 소개말이나 사진만 보고도 응원할 수 있다. 반면 얼핏 봐도 그냥 밋밋한 소환, 아무런 여파도 낳지 못하는 재구성, 복기에 그친 박제 전시는 가볼 마음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게 정말 합당한가 싶은 것이다. 결국 내용으로 내가 저울질을 하고 있단 건데, 그렇다면 이 형식이라는 것이 수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 형식체계의 세상에서 어느 한쪽으로 속아주고 있단 말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 속아주기, 눈감고 믿어주기라는 의심이 (이것이 중요한 의심인 이유는 ‘눈감고’라는 비유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시각예술분야에서 시각적인 것을 포기하며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풍선처럼 불어나면서 나는 이것을 하나의 에코챔버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하니 조금이나마 나아지긴 했다... 문제는 그렇다고 다른 좋은 방을 찾진 못했다는 데에 있다...

 

  이 에코챔버에서 이뤄지는 일이란 ‘이 작업의 재현은 부/적절하게 이루어졌다’고 토론하거나, ‘이 복원으로 기존의 거시사의 균열적인 지점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의미한 발굴이 된다’는 식의 논의들이 주를 이룬다. 이 방에서 이 글의 첫 머리(0. 어떤 의심)에서 던져진 물음들은 이미 괄호로 묶여 있기에 딱히 문제 삼을 것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저것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함의가 없단 말인가?) 가령 부산시립미술관의 《모든 것은 서로를 만들어 나간다》는 우신출의 <영가대>(1929)를 전시의 첫 단추로 삼고 있는데, 우신출의 <영가대>에는 영가대가 그려져 있지 않음을 환기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차의 형상을 바라보게 하고, 1910년경 완공된 부산 동래선을 언급한다. 영가대가 사라졌음에도 그곳이 영가대라고 불렸을 시절을 상상해볼 것을 제안하며,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인 자본가들의 수송과 수탈을 사유하는 지표-이미지로 작품을 맥락화한다. 그러니깐 이 전시에 깔린 미술의 전제는 어쩌면 마술과도 같은 것인데,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 전시에서 이렇게 보기로 약속하기 때문에 이렇게 본다. 이상. 다음 작품들도 그와 같음. 참고할 텍스트는 캡션으로 벽에 붙여놓았고, 중간 중간 사회학자, 역사학자, 노동운동가의 영상을 삽입 배치해두었으니 참고할 것.

 

 

우신출, <영가대>, 1929, 종이에 유채, 36x51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이것은 그야말로 복불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이 에코챔버를 제대로 부수지 않으면 안 되겠단 생각을 품게 한다. 이 복불복이란 것은 이 전시를 담당한 학예연구사가 대한제국 시기의 일제 수탈을 예찬하고, 박정희식 정치 내지는 전두환의 정책을 지지하며, 그것이 오늘날 다시금 필요하단 생각을 품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가정 속에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의 작품-맥락화와 전시 서사가 구축되었을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전혀 다른 큐레토리얼 방법론이 도출, 적용되었을까 하면 아니라는 것이다. 내용, 메시지는 다를 것이지만, 소장품전을 구성하는 시각적 질서 체계는 동일한 방법론으로 작동되고 있을 것이다. 미술관 벽면은 같은 작품과 그저 다른 자료의 인용, 다른 전문가의 인터뷰 영상으로 채워져 있을 뿐일 것이다. 이전의 소장품전들이 어떠한 맥락 속에서 열렸는지에 대해서, 소장품이 어떻게 공공적인 것인지를 설명하며 전시의 당위성을 서술하는 전시서문 역시 유사한 짜임새로 적혔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전이 드디어 예술가의 숭고하고 고매한 혼과 정신에서 벗어나, 시각적인 것이 사회-구조적인 것이자, 정치적인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 시도를 눈앞에 두면서 나는 느닷없이, 하염없이 아찔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파서, 전시를 두 번이나 보러 갔다. 그러나 고민은 그대로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2. 믿음의 폐쇄회로

 

  이 에코챔버를 부수고 깨야겠단 마음을 먹었으나, 그 이유가 ‘나와 다른 의견의 목소리를 내는 전시가 만들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엔, 내가 생각해도 형편이 없어서 기각되고 용인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왜냐면 그런 이유에서라면 차라리 미술관을 폭발시키자고 말하면 되고, 그냥 나아가 세계를……), 다른 말을 찾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카이브 선상의 전시가 ‘수건돌리기’ 게임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말해볼 수 있겠다. 즉 이것은 외부의 소리가 차단된 방, 오직 내부의 소리만이 휘감기는 폐쇄회로,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으로 앞으로도 무한하게 반복만을 지속할 것이라는 운명론에 입각해 있단 사실에 대해 제기해보는 것이다.

 

 

《경남 도큐멘타II - 형평의 저울》 전시 전경 일부. 출처: 경남도립미술관 페이스북

 

  《경남 도큐멘타II - 형평의 저울》의 주요한 모티프는 1923년 진주청년회관에서 백정들과 지역민들이 창립한 ‘형평사(衡平社)’에 기반하고 있다. 1894년에 갑오개혁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불평등한 신분사회가 지속되어, 백정들이 주축으로 지역사회에서 형평운동을 일으킨다. 경남도립미술관(의 학예연구사)은 이러한 가치에 주목하여, 그 역사적 기록물을 수집하고 현재로 불러내면서(형평사의 규약집, 형평운동의 포스터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오늘날에도 유사 원리로 발생하는 ‘인권문제’를 환기한다. 따라서 전시에서는 형평운동의 자료들이 시각적으로 제시되면서, 그것을 탐독해보았을 참여 작가들의 작품들이 선보여진다. 최수환은 <백 번의 봄>을 통해서 관람객이 직접 작동해보는 기계식 인형을 제작, 인형극을 보면서 형평운동의 주요한 장면에 형상으로 접근하도록 했고, 서평주는 영상에서 수어와 자막을 활용해 백정에 대한 차별의 역사와 2022년에 드러나는 장애인 차별, 혐오에 대한 문제를 교차시킨다 (<기울어진, 저울_선/대치/형평>). 권은비는 영상작업 <182219222022>를 통해 형평사 창립 1년 전인 1922년을 기준으로 100년 단위 속에서 여성서사를 음성언어-사운드, 신체-이미지라는 감각으로 재역사화 시키고 있다.

 

  형평운동이란 공통의 주제로부터 작업을 시작한 작가들은 이 사건이 현재에 다시금 이야기 되어야 하는 이유를 작품에 내포시키며, 과거를 현재를 교차하는 아카이브적 실천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데, ‘수건돌리기’라는 비유에 입각하자면, 우리가 오늘날에 조명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 형평운동 말고는 없었는가 하면, 작가들 저마다 ‘아니’라고 답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며(그들의 커리어를 보라) 그 말인 즉 이 작품들은 형평운동이란 역사적 사실을 대체하고서도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한 편으로 이 작품들이 형평운동이란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었음은 자명해 보인다. 중요한 건 이와 같이 ‘수건돌리기’의 게임에 모두가 참여하며 게임을 구동하고 있는 상황 그 자체인 것이다.[3]

 

  이것은 큐레토리얼의 차원에서도 당연히 나타나는 것인데, 몇 년 후 경남도립미술관의 또 다른 학예연구사 내지는 같은 학예연구사는 경남지역의 또 다른 역사적 사건을 발굴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시각적인 구성과 배치를, 그리고 적절한 작가들을 섭외하여 전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즉, 이것은 무한히 돌아간다. 미술관 내부 정책이 급작스레 바뀌거나 계획에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고서는 ‘경남 도큐멘타’라는 시리즈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은 2탄이지만, 언제고 50탄까지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전시의 풍경이란 ‘수건돌리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다시 말하지만, 운이 나쁘면 경남 도큐멘타10에서는 그 수건이 차별에 찬성하는 내용과 작업들로도 한 바퀴 돌 수 있는 것이다)

 

  ‘수건돌리기’는 무릇 놀이란 것이 그러하듯이, 적절한 선에서 끊었을 때, 놀이의 참여자들이나 관찰자들이 즐거운 상태 속에서 느슨한 공동의 감각을 획득하여 짧게나마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수건돌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하나의 놀이로, 일시적인 쾌-좋음-옳음을 위한 수단으로 작동되고 있단 사실이다. ‘수건돌리기’를 하다가 관찰자/참여자의 세계가 바뀌거나, 혹은 그가 속한 사회가 뒤바뀔 일은 딱히 없다. 수건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거 없음). 믿어볼만한 것은 ‘수건돌리기’를 참여하거나 목격한 사람이 이 놀이에서 얻은 무엇을 가지고 그 이후에 세상을 바꾸는 것일 테다. 그게 바로 이 글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내가 바꿀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거 말고 다른 걸 해보자, 정도인데, 문제는 역시나 다른 놀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서...

 

 

3. 부술 방법에 대한 궁리

 

  역사적 지식이 월등히 부족, 아니 그냥 무지한 나는 없었던 사건을 있었다고 조작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은 어떠한가?

 

‘이 전시는 1977년에 부산 사상구의 공단지역에서 발생한 ○○○○투쟁을 다시금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매번의 역사적 조명에서 누락 되었던 이 투쟁의 주역인 김□□의 일기장과 작품을 뒤늦게 조우하게 되면서 이 전시가 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신발공장에서 일하면서 종종 야학을 통해 회화를 배워, 작품을 남겨왔습니다. 본 전시는 그의 일기장과 남은 작품을 수집하여 주요 자료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의 일상을 되짚어보며...’

 

  그런데 이걸 정말로 조작이라 할 수 있는가? 내가 만들어낼 수 있을 법한 아카이브 전시에서 주요한 대상이 되는 저 가짜 사건이, 가짜인 이유가 정.말.로. 기.록.에.서. 누.락. 될. 수.밖.에. 없.었.던. 불.평.등.한. 세.계. 속.에. 놓.여. 있.었.다.면.? (솔직히 이 정도 되어야 ‘누락’과 ‘배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그러니깐 누군가에 의해서 철두철미하게 삭제되었기에, 아예 전승될 수 없기에, 이러한 조작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면? 아주 정교한 설계를 통해서 진짜 있었던 과거의 사건보다 더 믿음직스럽게 만들어낸다면?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득달같이 떠오른 현실은 결국 아카이브의 문제를 다루려니 나 역시 ‘어떤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연역법)’와 ‘어떤 일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겠다(귀납법)’의 논리체계를 따지게 되면서, 비교적 최근에 이 방에 등장하여(?) 코를 찌르는 기류, ‘어떤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집중하는 가추법을 들이미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에 더없이 비참해진다.[4] 이것이 에코챔버가 아니라 실은 고구마 줄기구나. 부수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더 제대로 갈아엎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2020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가, 2021년 부산현대미술관의 《시간여행사 타임워커》가 그러한 가추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두 전시는 모두 관람객에게 미션 내지는 SF 텍스트를 제공하면서, 탐정의 행위를 수행하게 한다. 여기서 탐정이 수행하는 일은 여태 서술해오고 있는 아카이브 행위와 동일한 방법론이다. 비참하다고 한 이유는... 이 글에서는 일단 말하지 않는다.

 

 

4. 부수고 싶단 미스테리한 욕망의 이유

 

  나는 최보련 작가와의 간헐적인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이 모든 것들이 노력의 문제이자 믿음(믿음에 관해서는 가장 마지막 문단에 나오니 잊지 말 것)의 문제라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할 수 있었다. 즉 리서치-아카이브-전시기획의 방법론이 휴머니즘-능력주의의 발상에 착안해 있단 걸 새삼스레 실감했는데, 지배 질서의 구조에 의해서 어떤 주체의 삶은 배제될 수밖에 없으며, 즉 어떤 목소리는 결국 들리지 않는 것이 되기에, 사회-정치적인 개입을 시도하고 책임감을 발휘하는 작가/큐레이터라면 그 누락과 배제에 저항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수순을 밟는다. 그리고 지금은 그 중심에 아카이브적인 것이 있다. 그러니깐 우리가 노.력.해.서. 놓.친. 것.들.을. 챙.긴.다.

 

  실제로 이와 같은 노력이 합산되어 미술계의 한 부분, 내가 에코챔버라 부르는 것이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노력이 구조를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단 생각에 딱히 동의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동의하기에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아무튼 나는 노력이야 말로 구조에 복무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현실에 존재하는 상이한 종류의 노력을 모두 뭉뚱그려 폄하, 부정하게 되는 것이고, 어떤 노력과 또 다른 어떤 노력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모른 체하는 것이 된다. 어떤 노력은 지지하되 어떤 노력은 기각해야 되고, 결국 이게 어떤 아카이브는 지지하면서 어떤 아카이브는 지지할 수 없는 문제와 평행세계를 이루며, 끝이 보일 리 없는 기나긴 전쟁터에 휘말리게 된다.

 

  나도 당연히 이 싸움에서 지지하는 쪽이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지지의 한 방식은 부정과 의혹을 제기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냥 이런 말이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화이트큐브에 입장하기 전에 자가-내면화해야 할 암묵지에 대해서라면 얼마든지 인정하고 순순히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입장 이후로도 언제까지 계속해서 속속들이 속아주어야/믿어주어야 하는가? 나는 특정 아카이브가 틀린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속아주고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방법과 전제에 대해서 계속 속아주고/믿어주고 있는 것이란 말이다.

 

  훨씬 더 급박한 방식을 눈앞에 두고, 코를 베이고 싶다. 내가 믿기 시작한 것조차 모르고, 속아 넘어가고 싶다. 더 소름 끼치는 형식과 절차의 전시구성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더 이상 과거가 과거 같지 않고, 역사가 역사 같지 않고, 미래가 미래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냉소적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오히려 이 기이한 미스테리가 냉소가 아니라, 오히려 재밌는 욕망의 속삭임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여기에 가담할 동지들이 필요하다.

 

  본문에서 언급한 두 전시는 근래에 본 전시들 가운데 단언컨대 최고다. 내가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정말로. 비꼬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어떤 말이든 붙이고 싶으니 어떻게든 붙여보는 것이다.

 


[1] 그리고 다른 한편 나는 내가 기획하던 전시에 최보련 작가를 섭외하게 되었는데, 최보련 작가가 품고 있던 “증언에 대한 의심”을 알게 되어 이와 관련한 의식의 흐름을 간헐적으로 공유한 바 있다. 사실 맥락은 좀 다르긴 하지만. 가령 나는 최보련의 <Patter(N)>(2021)과 <증언론을 위한 여덟가지 고려사항> 소책자(2021)를 대표적인 의심의 작업으로 꼽을 수 있겠는데, 이외에도 많은 단서를 제공 받았다. 감사합니다.

 

[2] 존 케이지, 나현영 옮김, 『사일런스 :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2014, 오픈하우스, pp7-8. 본 글에서는 무향실 내지는 반향실의 뜻으로 쓴다, 소리의 잔향 효과를 위해 제작한 인공적인 폐쇄 공간 즉, 외부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방 형태 공간을 말한다.

 

[3] 이 게임의 참여에는 비평가에게도 그 몫이 있다. 강선학, 「아카이브 언어와 공존할 수 없는」, <SSALAD>, 2022.09.30. (http://ssalad.com/2022/09/30/5612/)에서 제기된 비판적인 시각 역시 마찬가지다. 강선학은 《경남 도큐멘타II - 형평의 저울》에서 형평운동이 계급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투쟁으로만 좁혀져 제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전시가 계급운동의 서사를 반영했다고 가정해보자.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단 말인가?

 

 

[4] 여기서 잠시. 이 글의 논지를 따라오던 이들 가운데는 소장품 전시라는 형식, 도큐멘타라는 아카이브 전시 형식이 공통으로 갖는 과거-현재의 연결 및 운동성에 집중한 나머지, 가추법 논리의 전시를 아카이브 형식으로 나란히 두는데 다소 의아할 수 있다. 내가 한 가지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올해 말에 발간될 예정인 <뉴스페이퍼> 3호에 내가 기고한 글이 갖는 시제가 있을 수 있겠다. 그 글은 부산 수영구 망미동의 책방한탸라는 곳이 문을 닫기 이전의 시기(10월)에 작성되어, 책방한탸가 문을 닫은 이후의 시기(12월)에 발간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 글은 다가올 미래(신문의 발간 이후)에는 이미 과거가 된 시간대(11월)를 발굴하여 조명하는 텍스트로 성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