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모이는 시대 : 스터디 모임의 상품화 현상에 대하여

  취향 공동체. 이는 아마도 오늘날 2030 세대의 여가 생활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일 것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정기적으로 모이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혹자는 ‘소셜링 문화’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고,[1] 혹자는 사라진 ‘마을 공동체’에 대한 대안으로 삼기도 한다.[2] 이러한 문화적 현상에 대하여 학계에서도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본 고에서는 취향 공동체가 시장에서 상품으로 등장하게 된 지점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과거에 이미 젊은 층을 중심으로 존재하던 스터디 모임 문화에 주목하고, 이를 취향 공동체의 원형으로 간주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게 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문화에서 상품으로

 

  공통의 취향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교류하는 이러한 공동체적 네트워크는 최근 들어서 새롭게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오늘날의 취향 공동체를 과거의 마을 공동체에 빗대어 설명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또한, 스터디 모임을 비롯해 각종 동호회와 동아리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와 같은 소규모의 공동체적 네트워크는 이미 존재하던 문화에 가까웠다. 심지어 과거에 이러한 모임이 유료가 아닌 무료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적 네트워크는 어떻게 ‘상품’이 될 수 있었을까? 비용을 내지 않고서도 가능했던 네트워킹이 어떻게 ‘상품’으로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이러한 ‘상품’이 참여자들의 ‘참여’로 인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에 이르면 우리는 어떻게 이들이 대가를 주기는커녕 참여자들에게 비용을 치르기를 요구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참여자들은 어떻게 이를 수용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

 

  함께 교류하며 성장을 도모하는 오늘날의 취향 공동체에 앞선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터디 모임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활동 양식으로 자리 잡은 스터디 모임의 시초는 약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초, 해외 유학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와 함께 등장한 해커스 어학원은 스터디 모임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다. 학원은 정규 수업이 끝난 뒤 별도의 ‘조’를 짜서 학생들의 학습을 관리했는데, 단지 조를 짜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터디를 수업의 연장으로 여기며 적극 관리 감독하였다. 성실하고 적극적인 참여는 의무사항이었고, 경우에 따라 벌금이나 벌칙 등의 제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학습방식은 유학이나 취업 등의 목적을 위해 단기간에 어학 점수를 취득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특히 인기를 얻게 되었고, 점차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분야를 막론하고 효과적인 학습방식으로 널리 활용되기에 이른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 2010년대에 이르면, 취업을 위해 ‘스펙’을 중시하는 경향이 점차 강조됨에 따라 스터디 모임은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스펙 쌓기’의 전략으로 활용된다.[3] 특히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을 접하며 자라온 당시의 대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해 스터디 모임을 구하기 시작한다.[4] 따라서 점차 교류하는 이들의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고, 모임의 분야 또한 학업 및 취업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이처럼,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치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스터디 모임이 일상적인 활동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스터디 모임이 단번에 상품화된 형태로 시장에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스스로 스터디 모임을 꾸리던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임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었고, 이러한 니즈에 발맞추듯 어학원과 자격증 학원이 밀집되어 있던 강남역과 종각역을 중심으로 모임 공간을 임대하는 업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로 1시간 단위로 1인당 이용 요금을 책정하여 운영되었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공간만 제공하였으나 점차 이용 요금에 음료 제공 등의 서비스가 포함되는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5] 이처럼 모임 공간은 스터디 모임을 위한 정형화된 공간, 즉 회의실이나 세미나실과 같은 형태에서 점차 다양한 모임이 가능한 복합 문화 공간의 형태로 발전하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모임의 제반 환경을 갖추기 위하여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처럼 스터디 모임이 문화로 정착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모임을 위한 제반 환경을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거래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거래는 점차 공간을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임을 기획하고 관리하며 운영하는 일로 확대된다. 즉, 거래되는 것이 ‘공간’에서 ‘모임’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겨냥하며 2015년 등장한 트레바리를 중심으로,[6] 취향 공동체는 ‘상품’으로서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한다. 오늘날 취향 공동체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기업들은 모임 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모임 그 자체를 일종의 상품으로 제공한다. 다양한 주제로 기획된 모임들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전문가나 유명 인사를 ‘모임장’으로 내세우고, 모임 공간을 비롯한 각종 부대시설의 이용 및 할인 혜택을 홍보 수단으로 삼아 ‘참여자’의 ‘참여’를, 즉 ‘소비자’의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자이자 소비자는 이들이 제공하는 상품(모임)을 ‘구매’함으로써 모임에 비로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거래의 결과로 제공되는 상품의 질을 관리하기 위하여 업체들이 참여자들에게 일정한 규칙에의 준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때 규칙은 주로 출결, 참여도, 과제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곧 모임의 ‘분위기’를 저해하지 않기 위한 명목으로 부여된다. 업체에 따라 다르지만, 규칙을 준수하지 못할 시 제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엄격한 규칙에의 준수’는 오늘날의 취향 공동체와 과거의 스터디 모임이 공유하는 지점이기도 하며, 이러한 지점에서 주목할만한 사실은 참여자이자 소비자에게 일정한 행동 양식을 수행할 것이 추가로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곧 ‘상품’의 질(quality)을 좌우하는 역할을 한다. 즉, 참여자들의 적극적이고 성실한 참여가 곧 그 모임의 질을 담보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이 참여자의 참여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완성됨에도 불구하고, 즉 ‘상품’의 생산이 소비자에게 일부 전가됨에도 불구하고 왜 소비자들은 불만은커녕 이를 즐겁게 수용하는 것인가? 대가 없는 노동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값을 지불하는 이들의 행위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지점에서,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2. 시장의 포섭과 포섭된 주체

 

  상품의 생산 과정이 소비자에게 일부 전가됨에도 불구하고 반발은커녕, 열렬한 지지를 얻는 것은 일견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단지 최근의 현상이 아니며,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현상에 가깝다. 이는 20세기와 21세기를 거치는 동안 이루어진 생산 양식의 변화, 그리고 이와 함께 변화해온 소비자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분리되었던 생산과 소비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서서히 다시 통합되기 시작하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생산 소비자(prosumer)라는 정체성이다.[7] 과거 대량 생산 체제하에서 ‘이미 만들어진 물건’, 즉 기성품(readymade goods)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기에 그쳤던 소비자가 정보사회로의 이행과 함께 생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 또한 이를 받아들여 ‘생산 소비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며 생산 과정을 일부 개방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곧 소비자들의 잠재적 역량을 발휘하고 사회적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처럼 ‘경험’을 대가로 ‘노동’을 제공하는 거래는 21세기에 이르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이에 대하여 김영욱은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디지털 미디어 기업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출시할 때 이용자들에게 평가판을 배포해서 추가 비용 없이 프로그램을 보완한다. (중략)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은 사람들이 플랫폼을 이용하게 하고, 그것에 기반한 광고와 이용 데이터를 통해서 이윤을 획득한다.”[8]

 

  김영욱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소비자를 생산 소비자로서 강조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소비자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획하고, 구상하고, 오류를 바로잡고, 홍보하는 등 생산 소비자의 노동을 대가 없이 가져다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러한 업무는 기업이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루어졌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래는 채용 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무급 또는 저임금의 인턴십 제도나 대외 활동을 들 수 있다. 구직자는 노동을 대가로 경험을 얻고, 기업은 기회를 주는 대신 저렴한 비용으로 이들의 노동을 얻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거래가 상호 간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비판 또한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생산 소비자라는 정체성을 활용하는 데에 있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소비자라는 정체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일단 재화(상품 또는 서비스)를 구매하여 소비자가 되어야만, 구매 또는 사용 경험을 바탕으로 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즉, 생산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또는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대가 없는 노동을 수행하기에 앞서 ‘구매력’이 전제 조건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대가 없는 노동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가 다름 아닌 사회적 활동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는 지점은 특히 중요하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 또는 개인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얻기 위하여 ‘소비 활동’이 앞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소비는 반드시 ‘구매력’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떠올려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소비 활동이 사회적 활동에 앞선 선행 활동이 되었으며, 따라서 소비할 수 있는 능력(또는 구매력)은 곧 사회적 활동의 전제 조건으로 기능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실제로 오늘날 취향 공동체라는 ‘상품’이 참여자들의 참여로 인해 최종적으로 완성됨에도 불구하고, 즉 소비자가 생산 과정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모임이 곧 사회적 활동의 장(場)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래 방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 이르면, 여기에서 오늘날 젊은 층의 경제 활동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특징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소비 행위’가 단지 재화를 소유하거나 사용하기 위한 목적에 그치지 않고, 본 활동에 앞선 ‘사전 활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 2030 세대는 독서 모임을 ‘하기’ 위하여 독서 모임을 ‘구매’하고, 등산과 러닝을 ‘하기’ 위해 모임과 장비를 ‘구매’한다. ‘장치’로서의 환경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도구인 ‘장비’를 갖추는 것이 본 활동에 앞서 미리 갖추어야 하는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9] 이처럼 소비 행위는 점점 더 (그것이 어떤 활동이든 간에) ‘본 활동’에 앞선 ‘사전 활동’이 되어가고 있다. 소비 행위를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구매력이라는 앞선 논의를 상기할 때, 오늘날 ‘구매력’은 곧 ‘본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거나, 심지어는 ‘본 활동’을 비로소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구매력은 대체로 생산 활동에 종사함으로써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러한 사실을 무색하게 하듯, 생산에 앞서 소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활동이 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왜 그리도 ‘금수저’를 부러워하고 ‘건물주’에 열광하는지, 또는 어떻게 돈을 ‘쓸’ 수 있는 능력의 가치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의 가치를 압도하게 되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요약해보자. (구매력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소비는, 또는 소비자라는 정체성은 우리의 사회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구매력에 따라 우리의 사회적 활동이 좌우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스터디 카페’나 ‘프리미엄 독서실’ 이용권을 구매하지 않고서는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회원권을 끊지 않고서는 어떤 운동도 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우리는 어쩌면 헬스장 이용권을 끊은 것만으로도, 러닝 모임에 가입한 것만으로도, 등산 장비를 구매한 것만으로도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소비가 기본적인 사회적 활동에 앞서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자 동시에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우리의 가능한 대응은 무엇일 수 있을까?

 

3. 확장된 소비 또는 전치된 소비

 

  오늘날 2030 세대는 자신의 소비를 SNS에 전시하거나 증명하고, 소비 행위에 대한 기록인 소비 일기를 쓴다.[10] ‘살지 말지’를 고민하는 대신 ‘무엇’을 살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소비 행위는 그 자체로 목적인 활동이 된 듯하다. 따라서 과거에 돈을 버는 능력에 따라 돈을 쓰는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오늘날의 소비 행위는 결코 그러한 것 같지 않다. 오늘날의 소비 활동에 있어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능력이라기보다는 돈을 ‘쓰는’ 능력이다. 심지어 이들은 돈을 쓰는 과정에서 돈을 벌 기회를 포착하기도 하는데, 이는 곧 오늘날 소비 활동이 그야말로 생산을 위한 사전 활동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11] 이처럼 소비 활동을 생산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자체로 소비를 자극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어가고 있으며, 따라서 오늘날 생산에 앞선 활동으로서 소비의 역할은 점차 강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12]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스터디 모임의 상품화된 형태로서 취향 공동체가 시장에서 등장하게 된 것은 그에 앞서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생산과 소비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생산 활동의 결과로써 비로소 소비의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으로 소비 활동이 요구되는 현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부의 대물림, 양극화와 같은 진부한 주제로 연결하는 대신, 오늘날 감기보다 흔한 질병이 되어 버린 현대인의 무기력에 대한 실마리로 삼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고가의 소비가 트렌드가 되어버린 오늘날, 우리에게 소비를 위한 충분한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면 어떤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마음을 먹지 못할지도, 그리하여 헤어 나올 수 없는 거대한 무기력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기력은 우리가 어떤 것도 구매할 수 없다는 인식의 결과이자, 따라서 어떠한 활동도 제대로 시작조차 해볼 수 없다는 인식의 결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가치를 자본으로 치환하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한 것이기도 할 테다. 소비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회적 활동도 스스로 하기 어렵게 된 것처럼 보이는 이 시점에, ‘구매력’ 즉 돈을 ‘쓸’ 수 있는 능력은 분명 이전과 다른 위상을 점유하게 되었음이 분명한 듯 보인다.[13]

 


[1] 조유빈 기자, “‘취향 공동체’가 뜬다... 왜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로 모일까”, 시사저널, 2022.07.12.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778

 

[2] 장강명, “장강명 칼럼_취향의 공동체”, 한국일보, 2017.07.1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7131352319519

 

[3] “불황 속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대학가 ‘스터디 모임’ 열풍이 거세다.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토익 모의고사를 바꿔 풀어보자’거나 ‘일어-영어를 교환 강습하자’는 등의 스터디 모집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략) 공부·취업 대비뿐 아니라 취미와 여가 생활 등 자신의 일상을 스터디 모임으로 꾸려가는 양상도 나타난다.” 정유경 기자, “불황 속 ‘알뜰 스터디’ 열풍”, 한겨레, 2009.03.07.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2730.html

 

[4] 취업 관련 온라인 카페 ‘취업뽀개기’(cafe.daum.net/breakjob)는 2002년, ‘스펙업’(cafe.naver.com/ specup)은 2008년 개설되었다. 초기에는 주로 취업 관련 정보를 교류하는 데에 그쳤으나, ‘스터디 모집’ 게시판을 신설하는 등 점차 스터디 모임을 위한 플랫폼으로도 기능하게 된다.

 

[5]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시간제’형 카페이다. 기존의 카페가 음료 가격만 책정하고 공간 사용 시간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 것에 반해, ‘시간제’형 카페는 ‘1인 1음료 주문 시 4시간 이용 가능’ 또는 ‘시간권 구매 시 음료 제공’과 같은 운영 정책을 내세우며 ‘공간 이용 시간’을 판매한다. 따라서 ‘시간제’형 카페에서 중요한 것은 음료의 맛과 이용 가격보다, ‘공간’에 있었다. 모임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가, 또는 공부하기에 적합한 분위기인가 등이 주로 고려되는 조건이었다. 이러한 ‘시간제’형 카페는 어학원이 위치하던 신촌과 강남 일대에서 주로 운영되었는데, 현재에는 많이 사라진 듯하다.

 

[6] 독서 모임을 사업 모델로 삼고 있는 트레바리는 윤수영 대표의 개인적인 독서 모임 경험에서 시작된 사업이라고 한다. “독서 모임할 때 책을 읽고 얘기하는 것은 즐거운데 짜증을 일으키는 여러 행정적인 요소(연락하기, 회비 걷기, 독후감 받기, 장소섭외 등)가 있었다.”라고 말하며 이를 통해 사업의 가능성을 엿보았다고 설명한다. 모임에 수반되는 잡다한 요소들을 걷어내고 순수하게 독서 모임의 가치만을 얻게 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심재석 기자, “돈 내고 책 보라는 이상한 회사 ‘트레바리’”, 동아사이언스, 2016.08.02.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13258)

 

[7] 생산 소비자(prosumer)는 앨빈 토플러에 의해 1979년에 제안된 개념으로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라는 단어를 합성하여 만들어졌다.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원창엽 옮김, 홍신문화사, 2005. (1980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됨.)

 

[8] 김영욱, 「디지털 공짜노동, 논쟁과 진화 그리고 공유지 회복」, 『커뮤니케이션 이론』 제17권 3호, 2021, p.15.

 

[9] ‘본 활동’에 앞선 ‘사전 활동’으로 소비가 이루어지는 현상은 오늘날 널리 퍼진 ‘장비병’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장비병은 장비(equipment)와 병(disease)의 합성어로서, 취미생활 등에 필요 이상으로 장비를 구매하는 심리를 병에 빗댄 말이다. 해외에서는 ‘GAS(Gear Acquisition Syndrome)’라는 용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장비병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동네 뒷산을 오르기 위해 마치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등반가처럼 차려입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 ‘장비병’ 검색.)

 

[10] 인스타그램, 블로그, 그리고 유튜브에서 ‘언박싱’, ‘쇼핑하울’, ‘소비일기’, ‘쇼핑브이로그’를 비롯해 ‘추천템’, ‘반드시 사야할 것들’ 등을 다루는 컨텐츠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11] 물론, 오늘날 2030 세대의 소비가 모두 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소비 활동을 생산활동으로 전환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에의 투자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소비 활동이 곧 수익 창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고 구미를 당기는 일이 되어 고가의 소비를 자극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2] 이러한 확장된 소비의 역할은 곧 고가의 소비 활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를 일종의 유행으로 만들기에 이른다. 실제로 오늘날 2030 세대에게 가장 유행처럼 번지는 소비 품목은 일식 오마카세와 파인다이닝에서의 식사, 유명 호텔에서의 호캉스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이들은 한번 라운딩 갈 때마다 최소 수십만 원이 드는 골프를 취미로 삼으며, 해외 유명 브랜드의 가구와 조명 등 인테리어 용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가의 소비 활동에 대하여 유튜버 ‘부동산 읽어주는 남자’는 ‘허세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으로 오늘날 2030 세대의 소비트렌드를 설명한 바 있다. (출처 : 유튜버 부동산 읽어주는 남자’, “‘허세 인플레이션에 고통받는 2030, 지금 정신 차려야 합니다.” 2022.05.30.)

 

[13] 물론 앞서 서술한 사회적 활동(운동, 공부, 독서 등)은 소비하지 않고서도 물리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본 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사회적 활동에 앞서 소비가 필수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점점 더 흔하게 관찰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하나의 보편적인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결코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