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비엔날레의 무게

  ‘미술 전시가 그러하듯, 근래 빈번해진 디자인 전시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마도 이를 세 종류로 대별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자본주의 상품 시장에서 유통 중이거나 유통하려는 각종 디자인 결과물을 소개하는 데 치중하는 전시로, 대체로 페어혹은 박람회라는 이름이 붙는 유형이다. 두 번째는 어느 정도 시차를 가진 인물이나 사건에 주목하는 전시로, 보통 광범한 자료에 기반하며 종종 아카이브라는 수식어가 붙는 부류다. 세 번째는 디자인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두고 비판적 태도와 상상력에 기반하는 전시로 디자인의 가치와 의의, 가능성 등에 관한 모종의 화두를 던지려는 유형이다. 이외에도 스스로 생산한 작업 결과물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개인전이나 작품전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논외로 둔다.

 

  미술 전시의 구분과도 유사할 법한 세 종의 디자인 전시는 물론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 보통 첫 번째 전시가 산업과 실용의 맥락에서 작동하며 디자인의 생산과 유통을 촉진하는 장 역할을 맡는다면, 두 번째는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함으로써 궁극에는 서사를 만들고 대상을 역사화한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은 기획자의 고유한 안목과 문제의식을 담아낸다는 면에서 무엇보다도 기획력이 중요시되며, 디자인과 그를 둘러싼 정치, 사회, 문화, 예술에 대한 인식의 지평과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그런 면에서 첫째는 상업성, 둘째는 역사성, 셋째는 비판적 상상력과 연결된다고 거칠게 구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익숙하게 예상되는 셋의 약점도 있다. 첫째 전시의 경우 종종 기관이 풍기는 촌스러운 냄새로 뒤덮이면서 소비자본주의나 기술유토피아주의로 납작해진다는 점에서, 둘째는 대상을 섣불리 신화화하려 하거나 정보를 나열하기만 하는 등 원숙한 비평적 시각을 갖추지 못한다는 점에서, 셋째는 디자인에서 출발했으나 디자인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첫째는 피상성, 둘째는 타당성이나 객관성, 셋째는 개연성의 차원에서 약점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디자인을 다루는 전시가 반드시 셋 중에 하나의 노선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셋 가운데 둘, 드물겠지만 셋 모두에 해당하는 전시를 상상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갑작스레 디자인 전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올가을에 디자인비엔날레 두 개가 동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타이포잔치(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그 주인공이다. 둘 모두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어 그 역사가 짧지 않지만 널리 알려지거나 인정받은 전시로 자리매김했다 말하긴 어렵다. 그 가운데 더 주목을 요하는 것, 혹은 문제적인 것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이다. 종종 세계적인 행사라고 스스로를 수식하며 수십억 원의 예산을 쓰는 이 행사가 앞서 제시한 유형 가운데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 디자인 전시이며, 어떤 기능과 역할을 맡기를 자처하고 있는지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요컨대, 이 전시는 디자인 생산과 유통을 촉진하는가? 역사와 비평의 생성에 관여하는가? 디자인에 관한 우리 인식의 지평과 상상력을 고양시키는가? 궁극에 이 전시의 효용 가치는 무엇인가? 질문에 선뜻 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림 1. 2023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포스터(출처: 뉴스 1)

 

  다가올 9월 7일부터 두 달간 열릴 예정이라는 이 행사의 준비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양이다. 작년 10월에 총감독이 선임된 데 이어, 얼마 전인 2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주제(‘Meet Design’)와 세부 계획, 포스터 등이 공개되었다.(그림 1)[1]이 자리에서 총감독은 과거 행사, 그리고 예술 비엔날레와의 ‘차별화’를 강조하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얼마나 달라진 좋은 전시를 선보일지 뚜껑을 열기 전까지 알 수 없지만, 과거 이 행사의 말미를 장식하던 고리타분한 지역관(광주관)’ 구성을 없애겠다는 계획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뇌리에 깊게 남은 것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10회를 맞이한 세계 유일의 디자인 비엔날레라는 다소 황당한 오프닝 멘트와, 뜬금없게도 본인이 심사위원으로 있으며 상업색 짙기로 널리 알려진 레드 닷(Red Dot)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으로 출품작의 20%가량을 채우겠다는 총감독의 말이었다. 1998년부터 시작해 작년에 12회를 맞은 생테티엔 디자인 비엔날레(The Biennale Internationale Design Saint-Étienn)의 존재를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같은 달(9월)에 역시 열두 번째 전시를 여는 타이포잔치도 의식하지 못한 경솔한 발언이었다. 더구나 전시와 아무 관계없는 해외 디자인 어워드를 전시 구성의 조건으로 삼겠다고 당당히 공표한 점은 놀라웠다. 이는 단편적이지만, 이 전시가 무엇을 참조하거나 의식하고 있는지 (반대로, 참조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총감독을 비롯해 일련의 자리를 마련한 주최 측은 디자인 비엔날레의 본령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이 행사를 페어나 박람회의 연장으로 기술 체험의 장 내지 디자인 비즈니스의 장으로 –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대형 미술 전시의 성격이 변화했다 하더라도, 비엔날레의 요체가 2년마다 열리는 개최 주기, 수십-수백억 규모의 예산 등과 같은 외형적 조건만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그보다 시대와 공명하는 적정한 화두와 의제를 제시하는 것, 신작 위주로 전시를 꾸리며 새로운 실험의 장 또는 담론의 최전선 역할을 맡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지의 사실을, 이들이 유념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사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드물지만, 유사한 지적을 받아왔던 것이다. 비엔날레의 기능에 대한 산업디자인계의 무지와 무능”, “엑스포 같은 느낌임근준, 존재 이유와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김은아(월간디자인), 당대의 고민을 시각화하고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 김상규. 일련의 지적은 과거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역시 대체로 그 존재 가치가 의문시될 만큼 비엔날레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난 2021년 열린 9회 전시는 유독 특기할 만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가령 전시 주제와 기획 글부터 두드러지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먼저 혁명을 뜻하는 Revolution 앞에 로마자 d를 붙인 전시 주제 ‘d-Revolution’은 그 어느 회차와 비교해도 돌출될 만큼 뜬금없고 공허한 것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d’는 디자인을 말하기도 하지만, Data(정보), Dimension(차원), Day(일상), Doing(행위), Description(표현)을 뜻한다고 하는데, 다섯 단어들이 같은 글자로 시작한다는 점 외에 특별한 공통점이나 연결점이 없는 데다, 그 다섯을 어떻게 재발견”, “재정립”, “재생산혁명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근본적으로 왜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개연성과 맥락이 실종돼 파편화된 단어들의 나열이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아래와 같은 전시 서문이 45억짜리 ‘세계적’ 전시에 걸맞은 것이었다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d-Revolution」은 디자인을 통한 혁명의 표현으로 과거의 발명에 의한 혁명이 아닌 재발견, 재정립, 재생산에 의한 혁명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삶의 방식으로 2020을 기준해 전 세계의 관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만연한 지금, 우리는 변화보다 강력한 혁명(Revolution)을 준비할 때입니다. d-Revolution」 주제를 통한 다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모색합니다.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세상을 바꾼 다양한 디자인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2] –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 서문

 

  거의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 기획이 화려한 눈요깃거리 위주 구성과 거대 기업이나 브랜드 홍보관 형식으로 귀결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그림 2,3) 근본적 문제는 앞선 언급대로, 저열한 전시가 오랜 시간 성찰 없이 반복돼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 총감독 선임 조건을 “파급적 브랜드 효과를 지닌”, “마케팅에 능통한”, “산업계 전문가정도로 규정한 광주디자인진흥원의 디자인, 비엔날레에 대한 몰이해가 있다는 점 역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3] 이 전시가 알 만한 디자인-미술 분야의 인사들에게 공공연한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라는 사실을, 담당자들이 조금이나마 의식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반년 뒤 열릴 새로운 전시를 앞두고 다소 민망한 말일지 모르나, 이 행사의 지속 여부를 포함해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검토하지 않는 이상 기성의 고정관념을 씻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림2. 2021년 제9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4관 전시에 등장한 조수미 홀로그램 (출처: gdb.or.kr)

 

그림3. 2021년 제9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1관 전시에 등장한 작품 <From color to Eternity> ( 출처: gdb.or.kr)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화 가능성의 문제를 잠시 미뤄둔다면, 제법 괜찮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서두에 서술한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날의 디자인 전시가 근거하고 있는 세 유형의 특장점을 한데 가져오되, 각각이 비판받는 지점을 약화시킬 수 있는 또다른 디자인 전시의 모습을 그리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이를테면, 상업성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산업과 상품으로써의 디자인의 가치와 역할을 조명하고, 때때로 중요한 인물 또는 사건의 역사성과 문제의식을 건조하게 환기시키고, 그러면서 시의적절한 화두를 제안하며 디자인의 미래적, 사회적 가능성을 논하는, 그런 디자인 전시 말이다.

 

  디자인 비엔날레가 예술 비엔날레와 달라야 한다는 새 총감독의 말은 그런 면에서 전적으로 공감할 만하다. 다만 그 차별화 의지가 디자인 비엔날레를 공산품 거래의 장이나 기술 쇼로 전락시키는 것까지 정당화시켜주지는 못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디자인을 소비나 산업에 국한한 것으로 보며 관련한 내용을 주축으로 전시를 조직하려면, 비엔날레가 아닌 다른 전시 유형을 표방하면 될 일이다. (‘페어가 너무 가벼워 보인다면, ‘디자인 위크디자인 페스티벌처럼 창의적 의제 탐색이 전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은, 캐주얼한 행사들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모습을 참고할 수 있을 법하다)

 

  세상 전반이 그러하듯 오늘날 디자인을 둘러싼 담론의 흐름은 꽤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한쪽에서 여전히 자본주의와 성장 지상주의의 가치를 공고히 내재화한 일군의 경향이 디자인 싱킹이나 디자인 매니지먼트 등으로 변주되어 지속되고 있는 한편,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물질주의적 조건 환경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시급히 요청된다는 시각도 드물게나마 나타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우리에게 디자인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와 같은 근본적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일지 모른다. 모름지기 디자인 비엔날레라면 이러한 고민의 무게를 나눌 책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긴 시간 동안 외면해 온 질문에 답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1] 전체 간담회 내용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진실타임스 - [코난 TV], '[LIVE] 2023.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마스터플랜 기자간담회'

 

[2] 2021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 가이드북

 

[3] 광주디자인진흥원, 2021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공개모집 공고(), 20206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