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페이지 소설 시리즈(1): '소인연구소' 김XX소장 인터뷰-경산 코발트 광산 방문에 갈음하여

 

"딱 까놓고 말해 보자구. 남덜 힘든 걸 못 느끼는 게 그게 죄야?

당신들 아니할말로 차별 없애자, 없애자 맨날 그러면서. 요새 뭐?

공감 능력도 지능이라매? 그럼 지능 떨어지는 사람 차별하자는 거야 지금?"

- 소인 연구소 김 소장 사전 인터뷰 중(2023.6)

 

 

기록관의 노트

 

  아래는 2023년 7월의 어느 날 연락을 끊은 김 소장을 인터뷰 한 내용입니다. 방문 당일에 잠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안타깝게도 김 씨는 기죽은 듯한 말투로 일관했습니다. 저는 그가 결과로 평가받는 20세기 말 교육 환경에서 자라온, 대부분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중력이 좋지 않았던 그는 시작부터 뒤쳐지게 되었음을 토로했으며, 어릴 적 다양한 관심과 시도도 '까불이' 아니면 '말썽쟁이'라는 틀로 규정되었고, 평생을 열등감 속에 살아야 했다고 분개했습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곳이 경북 경산의 한 역사적 장소,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현장입니다. 코발트 광산 근처에서 만남을 가졌던 김 소장님, 이 글을 보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기록관) 안녕하세요, 김 소장님. 다시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오늘 소장님 방문의 기록을 맡은 기록관입니다. 먼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려요. 간단히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여쭤보겠습니다.

 

  김 소장) 네, 저는요, '소인연구소' 소장 김 아무개올씨다. 반갑슴다.

 

  기록관) 소인연구소의 소장이시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소인연구소는 어떤 곳인지 간단히 여쭤볼까요?

 

  김 소장) 녜녜. 그냥 김 소장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자, 바보가 스스로 바보라 하면 더 이상 바보가 아니듯, 소인이 소인을 자처하는, 그러니까 실은 우리가 군자, 대인으로 가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시죠? 아주 아이러니한 이름이외다. 소인을 연구한다, 이렇다기 보담은, 회원 중엔 교편을 잡고 일하시다 은퇴하시고 한 분들도 계시고, 일테면 자기 주제를 하나 놓고 연구를 해나가는 모임이에요. 정기적으로 회원들과 모임을 갖고, 산에도 가끔 가고 그런, 뭐 동호회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서두. 저희 연구소 회원들은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보면 쇤네를 자처하는 그런 분들이에요. 기댈 곳 없는 사람들, 일테면 가정, 배경, 관계, 겉모냥... 다 자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닌데 그치만서두 떳떳하게 사는 사람이요. 특성으로는 해다가, 우리는 모두 조바심을 다들 좀 갖고 있고... 네, 조바심이 좀 있죠. 아무래도 사회적으로다가는, 위계에 좀 민감해. 집단으로 치면, 그러니까 사람 많은데 가면 내 위치를 얼른 확인하고자 하는 그런 게 좀 있죠. 쉬운 말로다가, 나이, 고향, 학교, 요런 걸 파악하려고 질문을 좀 하는 습벽이 있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요샛말로 존재감이라나, 그런 게 이 딱히 있지는 않아서, 간단히 말해,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해 봐요. 스스로를 드러내려고 안달이 조금 나 있으면서도 위계에 예민한, 그런 사람들이 모인 연구 모임, 요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살아오면서 아이러니하게 상처가 좀 있는, 많은 편입니다. 혼나면서 살다 보니 마음이 위축돼서… 그래서 더 이상은 위축되지 말자 이겁니다. 제일 좋은 방법으로는, 갖다가, 내 아래로 다른 사람을 하나 놓으면 마음도 안정되고, 하여간 기회만 닿으면 그러려 노력합니다만.

 

  기록관) 사람을 아래로 놓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김 소장) 아까 위계 얘기 했죠? 누군가를 아래 위계로 놓는다는 그런 거에요. 나이도 있고, 내가 또 사내니까 그런 것도 어쩜 유리하고. 뭐 시시콜콜 안 따져도 내가, 일테면 판단하는 위치로 가면, 난 자연히 올라가게 됩디다. 그러니까 옐들면 심사위원 같은. 에... ’그건 내가 인정 못하지, 으?', '사람 그렇게 다루면 버릇 나빠져 ’, ‘에이, 그건 아니지’, 요런 평가자로서의 말투를 평소에 사용하는 게 중요해요. 덧붙이자면 혼자보다는, 아무래도 ‘우리’ 가 ‘나’보담 더 좋고. ‘우린 또 이런 건 안 하지’, '우린 이런 건 안 먹지', 요렇게요.

 

  기록관) 아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에 소인연구회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오늘은 경산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까 하는데요, 경산, 그것도 코발트 광산에는 어떤 일로 오시게 되었나요?

 

  김 소장) 아, 벌써 끝난 거요? 우리 연구회 활동이 많은데…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그, 전문용어로다가 심리적인 그 원인을 한번 생각해 보란 거에요. 우리 회원들이, ‘야야, 나도 힘들어, 됐어’, ‘에이,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이런 말을 자주 하는 편인데, 이게 바로 다른 사람 힘든 거 영향 안 받고, 그런 일에 시큰둥할 수 있는 비결이라 이거요. 경산에 온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거야. 우리 연구회 산하 과학 분과가 있는데 그때 정례회의 때 이 얘기가 나왔었지. 과학 분과에서는 21세기 과학의 시대를 맞이해서 각자 연구 주제를 정했는데 말예요? 그때 토의 안건이, ‘고통이란 바로 신경전달물질’, 이게 이름인데, 부제라고 하나? 그거 나온 게, ‘남들 고통에 둔감한 우리, 이게 과연 문젯거리인가?’ 요거였어. 아주 재미있지? 아직 이 코발트광산에 안 들어가 봤는데 기록을 읽어보니 내가 든 생각이 있어. 딱 보이더라구. 난 말이야, 사회의 한 체제 유지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인명을 희생하고 싶었던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손 더럽힘 두려워하지 않고다가 사회 구성원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이 주마등처럼 주욱 생각납디다. 한국뿐 아니야.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에서, 캄보디아에서, 그리고 머나먼 독일이나 아르헨티나에서… 선지자들, 아직까지도 각국에서 추앙받고 있다고. 그런 강력한 지도자들의 슬픔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아니할말루다가, 제군들이 앞으로도 이런 비극에 휘말리지 않게 되었으면, 이런 무섭고도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도 해봤고. 저는 말이요, 강력한 그런 걸 원해요. 나를 지켜줄 그런 그 힘, 힘만이 내 안에 이 두려움을 덮어준다 이거야. 사회가 왼쪽 오른쪽으로 갈리고 하는 이야기에 세상 걱정들을 하는데, 우스운 이야기지. 그게 다 상대방을 척결 대상으로 보면, 어느 쪽이나 똑같아지는 거야. 결국 가서는 일대일로 비율이 맞춰지는 얘기 들어봤지? 시쳇말로 깨시민인지가 한 명이 증가하면 태극기 회원이 한 명같이 증가한다는 거지. 일종의 음양의 원리, 매트릭스라는 헐리웃 영화 봤지? 젊은 사람이니까? 거기 그 네오의 힘이 커지면 스미드? 그 검은 옷 요원의 힘도 같이 커지거렁. 당신이 날 눌러서 위로 올라가면 나는 모자란 사람이 되잖아. 우리가 하는 일은 반대로도 뒤집어 보는 거야. 그럼 당신이 밑이지. 이러면 또 내 두려움이 뒤집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아, 위정자들이 결국 우리 편은 아니라는 걸. 그걸 왜 모르겠어말이야? 그래도 일단은 젠체하는 것들을 꺾는 게 우선이라 이거지. 내 설움, 내 조상, 으? 그 억울함, 매일매일 아이러니하게 느껴야 하는 그 모멸감, 배웠다는 것들이 나한테 보내는 비웃음, 동정 같은 거 하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냐? 그 너희들의 안다는 듯한 미소는 죽음으로만 갚아야 한다, 우릴 업신여기는 먹물들에게 비참한 최후를!

 

  기록관) 소장님, 조금 진정하시고, 이제 곧 코발트 광산에 들어가시게 될 텐데, 마음을 안정하시고요, 좋은 경험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학문적 호기심 때문에 오셨다는 말씀으로 기록하겠습니다. 끝으로 서면 인터뷰에 말씀해 주신 내용을 첨부한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부디 좋은 연구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 소장의 노트

 

  공감 능력도 지능이라는 세상 이야기에 속이 상해버렸음을 고백하며. 고통이란 무엇인가? 고통이란 신경에 전달되는 전기적 신호이고, 시냅스에 배달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그건 말하자면 결국 단백질이고 세포막 통과가 결코 안 된다. 그러나 개체가 파괴되면, 그러니까 사람이 갑작스레 명을 달리하면, 이 물질은 결국 물에는 녹는다, 이런 말이다. 주변에 물이 있다는 가정을 하자면, 게다가 밀폐되기까지 한 곳이라면 고통의 신호가 시간이 지나도 녹아있지 않을 확률이 있다는 것을 기록한다. 오늘 내가 경산에 가는 이유도 거기 있다. 이제 나는 거기 들어간다. 나 김XX가 지금까지와 달리 일면식이 없는 사람의 고통에 직접적으로 반응하게 되면, 이거 하나가 증명된다. 공감능력이라는 건 그저 신경전달물질 수용 능력의 개인차였다는 거지, 지능과 무관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절감한다 해도 내 삶에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