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의 이상향과 우상향의 그래프

 

사회적 의무로서의 추모

 

  특정 지역과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례는 시신을 처리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부패하는 시신을 살아있는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격리시켜 질병의 창궐 따위를 막는 중요한 일이다. 조선 시대에서 풍수지리의 중요한 역할은 묫자리를 지정하는 건데, 최대한 시신이 빨리 썩어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양지바른 땅을 위해 바로 이 풍수지리가 작동했다. 시신이 썩지 못하면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이는 사회의 안녕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시신의 부패가 진행되지 않는 히말라야의 고산지대나 건조한 몽골 초원에서의 장례는 독수리나 늑대에게 시신을 남김없이 먹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역시 시신과 사회의 격리 그리고 최대한 빠른 시신 처리를 목적으로 발생한 장례 방식이다.

 

  현대사회로 넘어온 사회적 장례와 추모의 작동 방식은 훨씬 복잡해졌다. 우리가 현대라고 일컫는 시대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거치며 시작됐기 때문일 테다. 비극이 흩뿌린 숱한 죽음들은 결코 비극 이후의 사회가 끊어낼 수 없는 맥락을 가지게 된다. 이제 사회는 비극적 죽음을 적절한 방식으로 추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9.11 테러와 함께 우리 모두는 21세기의 시작부터 적절한 애도의 방식을 찾아야만 했다. 눈앞의 전쟁을 말아 올리더라도 재난, 재해, 테러, 참사, 질병, 자살 등이 전쟁과 흡사한 규모의 비극으로 거듭 등장한다. 때문에 우리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비견할 수 없는 규모의 기념비를 숱하게 세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상적 추모라는 고민이 시작된다. 사회적 의무로서 추모해야 마땅한 비극이 도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추모의 이상향

 

  한국전쟁 이후의 굵직한 비극을 나열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장 90년대의 삼풍백화점 붕괴나 2010년대의 세월호 침몰을 떠올릴 수 있다. 두 대형 참사는 그 규모 면에서나 발생 원인 면에서나 비슷한 매무새를 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애석하게도 이상적 추모의 방식을 찾아내지 못해 떠돌고 있다는 점이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실종자로 기록된 6인을 포함한 508명이 사망하고 9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의 추모비는 사고 발생 지점으로부터 5km나 떨어진 양재천변의 한 공원에 엉뚱하게 세워졌다. 기념비가 장소 특정성을 잃은 이유는 당시 서울시와 서초구가 유족 보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당 부지를 민간에 팔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참사 장소에 추모 공원을 짓는 것을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거센 반대가 주요 원인이었다.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인 서초 4동 1685-3번지에는 현재 주상복합 아파트 아크로비스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전까지 살고 있던 바로 그 아파트다. 뉴욕 한복판에 솟아있던 쌍둥이빌딩 부지에 9.11 메모리얼 파크가 만들어진 것과 대조된다.

 

  가칭 세월호 추모공원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 역시 삼풍백화점 때와 똑같은 모습이다. 안산시 단원구에 들어설 계획이던 추모공원을 두고 시민의 의견은 둘로 쪼개졌다. 추모공원 건립을 하루빨리 추진하라는 의견과 집 앞에 납골당이 들어서면 좋겠냐는 식의 반대 의견이 안산시 홈페이지에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내년이면 10주기를 맞는 세월호 참사의 추모는 이런 형태로 여태 완결되지 않고 있다.

 

  이상적 추모의 필요조건은 장례라는 의식의 수행과 맞물려 있다. 머나먼 청동기의 고인돌을 언급한 이유는 끝내 그 큰 돌을 옮겨 원하는 형태의 기념비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추모의 이상향은 장소성을 갖춘 형태의 완결에 있다.

 

 

 

경산시 예산과 코발트 광산 일대 공시지가 그래프

 

우상향의 그래프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에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고 안산시 단원구의 주민들이 세월호 추모공원 건립을 두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것은 부동산 시세 그래프의 우상향을 사회의 이상향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렇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추모의 문제는 부동산의 시세와 밀접하게 결합됐다.

 

  국토교통부 부동산 공시가격 정보를 훑어보면 경산시 코발트광산 일대의 공시지가는 1993년 1제곱미터당 1만 원 정도였다. 30년이 지난 2023년 현재 9만 원을 밑도는 수준으로 약 9배 올랐다. 같은 기간, 강원도 정선군 사북면 폐광 지역이 강원랜드 개발과 함께 6천 원에서 15만 원으로 25배 가까이 오른 것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의 오름세지만 두 지역의 공시지가를 견인한 것이 개발 호재였다는 점에서 그 형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광산이 위치한 경산시 평산동 일대의 부동산 가격은 2004년까지 변동이 거의 없었으나 2005년부터 2008년까지 6배 가까이 급등했다. 2005년, 광산 부근 대규모 토지의 골프장 건설이 승인되면서 인터불고 호텔이 토지를 매입해 2007년 완공했다. 골프장 건설이 부동산 개발 호재였다.

 

  광산 주변의 토지 공시지가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등락을 이어가다 2014년부터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고, 2018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시행 이후 1년 동안 40% 가까이 폭등했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를 정권별로 정리해 보면 광산의 땅값은 김대중 정부 때 1만 원 정도로 가장 낮았고 노무현 정부 때 첫 급등세를 보여 6만 원에 육박했고, 이명박 정부 때 안정됐다가 박근혜 정부 때 7만 원대를 돌파했고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다시 급등세를 보이며 9만 원대를 돌파했다. 그래프상으로 보면 광산의 땅값이 급격하게 늘어난 두 구간이 보인다. 2005년부터 2008년, 2019년부터 2020년 구간이다.

 

 

무언가가 묻혀있는 땅

 

  경산시의 한 해 총예산 역시 21세기 들어서 꾸준히 증액됐다. 2001년 2천3백8십5억 원이었던 경산시의 한 해 예산은 2023년 1조 2천7백2십8억으로, 약 6배가량 올랐다. 증가 추이 그래프를 보면 정권별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예산 변동이 거의 없었다가 노무현 정부 때 두 배 가까이 올랐고, 이명박 정부 때 완만한 오름세를 보이다가 박근혜 정부 때 급격히 올랐으며 문재인 정부 때 다시 작은 규모로 증액되다가 후반기에 1조 원을 돌파했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가파르게 예산이 증액됐다.

 

  시 예산은 응당 지역발전을 위해 사용된다. 그리고 이런 예산의 증액 덕분일까? 경산시의 인구는 2021년까지만 해도 전국의 추세와는 반대로 증가하고 있었다. 지역 내에 대학만 열 곳이 넘었기 때문에 청년층 인구 유입도 꾸준했을 것이다. 이런 인구의 증가는 경산시 입장에서 다른 어떤 지표보다 개발의 당위성을 마련해 줬다. 골프장 건설도 아파트 단지 구성도 모두 이 당위성을 토대로 추진됐을 것이다.

 

  하지만 학령인구의 감소와 저조한 출생률은 경산시를 피해 가지 않았다. 2022년, 경산시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고, 저출생 고령화가 가속되고 있다. 2023년 8월 기준, 경산시 내에서 폐교가 확정된 대학은 아시아대학교, 대구외국어대학교, 대구미래대학교 등 총 세 곳이다. 남아있는 열 개의 대학 역시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미 한 곳은 학자금 대출과 국가장학금이 전면 제한된 국가 재정 지원 불가 대학으로 지정됐다. 2023년 전국 고3 학생 수는 28만 명이다. 학령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고, 청년층 인구의 감소는 현실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경산시는 인구 유지나 관광객 유치로 관점을 바꿀 수밖에 없었을 테다. 그 일례로 경산시는 폐교가 확정된 대구미래대학교 부지를 매입해 연면적 5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청소년수련관 건립을 추진했다. 현행법상 지자체는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을 만들 수 없는 탓에 많은 지자체가 청소년수련관이라는 방법으로 우회해 숙박시설을 건립한다. 지자체에서 만들 수 있는 호텔과 가장 흡사한 시설이 바로 청소년수련관이다.

 

  경산시는 청소년수련관 건립에 221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설계 공모 선정까지 완료돼 건립 공사가 2022년부터 진행됐으나 2023년 4월, 돌연 백지화됐다. 대구미래대학교 부지 내에 10만 톤가량의 불법 폐기물이 매립돼 있었기 때문이다. 처리 비용만 190억 원에 달했고, 학교 재단에 구상권을 청구하려 했으나 재단은 이를 수용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과 예산이 허무하게 소모됐다. 경산시는 이곳에 불법 폐기물이 매립된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게 됐다. 다시 시간과 예산을 들여 문제를 풀어야 할 입장이 된 것이다.

 

  경산시가 청소년수련관을 건립하려 했던 대구미래대학교 부지로부터 직선상 1.5Km 떨어진 곳에 코발트광산이 있다. 그곳엔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학살 피해자들의 유골이 묻혀있다. 보도연맹 학살과 같은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히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이다. 대구미래대학교 부지에 묻혀있는 폐기물 문제를 풀어야 할 당위성을 경산시가 가지고 있다면 코발트광산에 묻혀있던 문제를 풀어야 할 당위성 역시 경산시가 가지고 있다. 이로써 명백히 추모의 문제는 의지의 문제가 됐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무엇보다 코발트광산 주변의 부동산 시세가 우상향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고 한들 한 해 예산이 1조 원을 초과하는 경산시가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다. 다시 청소년수련관이라는 이름의 호텔을 짓는 일과 새롭게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일 중 무엇을 추진할지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서울시와 서초구가 포기했던 시민과 설득과 안산시가 반대 의견에 직면해 지지부진한 시간을 보내는 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여기에 뼈가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