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감각 우주: 쌍둥이 블랙홀로부터

 

“Gravitational-wave data from colliding black holes is called a ‘chirp’: 

it sounds like a bird when it converted into sound”

Wanda Diaz-Merced

 

  

 

I. 우주를 향한 감각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요한 적막을 떠올려보라. 주변의 그 어떤 존재로부터의 소리도 들을 수 없고, 힘껏 내지른 비명이 한 치도 뻗어나가지 못할 절대적 침묵의 공간을 말이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우주의 소리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일 테다. 실제로 우주는 거의 진공에 가깝기에 소리를 전달해 줄 매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주를 향해 귀를 기울이기보다 우주로부터 온 빛을 바라보는 데에 더 익숙하다. 머나먼 별과 은하로부터 발산한 빛은 기나긴 시공간을 넘어 인류의 눈에 닿았고, 그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물질의 조성과 진화를 이해해 온 과정이 바로 현대 천문학이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사용해 밤하늘의 천체를 관측한 후로 400년간, 빛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선물하였다. 목성의 달을 보며 지구가 온 우주의 중심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고, 초신성 폭발을 목격하며 별에게도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모든 별들이 은하라는 더 큰 구조의 일부임을 알고 난 후에는 인류의 우주관이 확장되었으며, 빅뱅으로부터 우주가 팽창해 왔다는 증거를 발견한 후로 우주론은 비로소 역사학의 형태를 띠었다.

 

  먼 미래의 인류가 우주의 어떤 비밀까지 알게 될지 예측할 순 없지만, 우리가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우주의 빛을 목격하며 우주론을 확장시켜 온 역사는 곧 우리가 빛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음을 암시한다. 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존재와 사건이 미지로 남아 있을지를 상상한다면 우리가 이 우주에서 영원한 농인이라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질지 모른다. 이러한 우리에게도 한 줄기 가능성이 있다. 이야기인 즉, 우주 공간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모든 파동이 전파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공간 그 자체를 매질로 퍼져나가는 중력파(Gravitational wave)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II. 공간을 울리는 중력파

 

 

아인슈타인 장방정식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수학을 사랑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지만 위 수식이 지극히 아름답다는 사실 하나는 믿어주길 바란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한 문장으로 축약한 장방정식(Einstein Field Equation; EFE)이다. EFE의 왼편에 있는 g는 공간의 기하, 즉 geometry를 의미한다. 반대로 오른편의 T는 그 안의 물질 분포를 설명한다. 그러니 EFE를 사람 말로 풀어쓰자면 “물질이 공간의 기하학을 결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공간이 물질과 상호작용하며 역동적으로 변한다는 설명은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제시하는 독특한 해석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해석을 바탕으로 ‘중력은 물질이 서로를 당기는 힘’이라는 뉴턴의 견해를 뒤집고 ‘물질이 공간을 휘게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미끄러지는 현상’이라는 관점의 전환을 이끌었다.

 

  이 두 가지 견해는 서로 끌어당기는 두 물체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에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태양이 갑자기 지구 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자. 뉴턴의 관점에서 이것은 서로의 팔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던 두 사람이 손을 놔버린 상황이다. 이에 지구는 곧장 균형을 잃고 날아가 버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따르면 태양이 사라졌다고 해도 지구가 이를 즉시 알아차릴 수 없다. 대신에, 태양이 사라지면 태양이 누르고 있던 공간이 서서히 펴지면서 지구가 있는 공간의 형태를 바꿀 것이다. 그 변화가 닿은 순간에서야 지구는 요동치는 공간의 흐름을 느끼고 우주 저 멀리로 흘러가게 된다. 이처럼 물질의 변화가 생겼을 때 그것이 차지하던 공간의 변화가 퍼져나가는 흐름이 바로 중력파이다. 

 

 

III. 지구의 달팽이관

 

  이론상 우리가 의자를 끌며 일어서는 순간이나 탁자에 커피잔을 내려놓는 순간에도 중력파가 퍼져 나간다. 그러나 이 정도의 중력은 너무나도 미약하여 주변에서 이를 감각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별과 별이 부딪히는 순간은 어떨까? 그 거대한 존재들의 변화는 분명 주변의 공간에 큰 요동을 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드넓은 우주 어딘가에서는 그처럼 고요한 대사건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의 어딘가에는 중력파가 울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 하나를 가지고 천문학자는 실험에 착수했다. 미약한 중력파 신호를 검출하기 위해서 이들이 선택한 수단은 간섭계였다. 간섭계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들어온 두 파동이 겹쳐질 때 만들어지는 간섭무늬가 아주 민감하다는 특성을 이용한다. 중력파 탐지기는 거대한 두 개의 터널 끝에 거울을 달아두고 레이저를 쏘아 되돌아온 빛을 교차시킨다. 안정된 상황에서는 간섭무늬가 일정하겠지만, 어느 순간 중력파가 탐지기를 훑고 지나며 터널 한쪽의 길이가 미세하게 달라진다면 무늬도 변하게 된다. 따라서 이 무늬의 변화를 감지함으로써 우리는 우주의 어디선가 중력파가 다가오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셈이다.

 

  중력파에 대한 기대를 품고 수십 년간 연구를 지속해오던 LIGO(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는 지난 2015년 9월 14일 드디어 우주에서 온 신호를 검출한다.[1] 사실 이들이 목표한 신호는 별보다도 훨씬 무겁고 응축되어 있는 존재인 블랙홀¹ 간의 충돌이었는데, 그정도로 무거운 존재들만이 겨우 탐지가능한 수준의 공간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이었다. 이때 발견된 신호는 각각 태양의 36배와 29배 질량의 두 블랙홀이 서로를 빙글빙글 돌다가 합쳐지는 시나리오와 합치하는 파형을 보였기에 첫 번째 중력파 탐지의 기록으로 남았다.

 

중력파 사건 GW150914의 신호[1]

 

 

IV. 우주의 신호, 인간의 대답

 

  위 사례에서 중력파를 탐지했다는 것은 4km의 터널이 겨우 10경(京) 분의 1m만큼 변한 순간을 포착했다는 의미이다. 과연 우리는 이 측정을 믿고 블랙홀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는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 현시점에서 최선의 결과일 테지만, 언제나 신뢰보다는 의심을 보내는 것이 과학이 진보해 온 방식이다. 충분한 의심을 밟고 올라서지 않은 채로 철학을 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언제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다면 그전까지의 모든 논의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지로 가득한 우주에서 희미한 진실을 추구하는 천문학자들은 직접 보지 않은 것을 전혀 믿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의심 많은 이들이 중력파의 실체를 납득한 사건은 지난 2017년 8월 17일에 발생했다.[2] 이때는 블랙홀이 아닌 중성자별 두 개가 충돌하는 신호가 탐지되었는데, 놀랍게도 중력파가 들려온 방향의 하늘을 촬영하였더니 그동안 관측된 적 없었던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는 중성자별²이 충돌하며 퍼뜨린 방사성 물질이 빛을 내는 킬로노바의 순간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보고 들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탐지한 중력파가 환청이 아니라 정말로 우주에서 들려온 신호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중력파 사건 GW170817과 함께 발견된 킬로노바[3]

 

  우주를 보는 동시에 듣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한다. 중력파가 얼마나 높은 주파수로 들려오는지, 얼마나 큰 진폭으로 들려오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우주의 어떤 물질이 얼마나 멀리서 충돌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기원하였는지 시각적으로 동시 목격하는 것은 내가 방금 들었던 신호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계의 간극을 잇는 연결고리가 된다. 귀가 트이기 시작한 갓난아이가 세상의 소리를 따라하며 감각의 피드백을 받는 것처럼, 인류는 중력파를 통해 더 넓은 우주의 3차원적 구조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직 우리의 중력파 기술은 미약하지만, 빛을 통해 우주를 이해한 지난 400년의 성취를 되새기며 인류가 이 새로운 감각에 익숙해진 이후의 미래가 얼마나 달라질지 기대해 보자.

 


 

¹ 블랙홀은 이름과 달리 검은 구멍보다는 검은 별에 가깝다. 무거운 별의 잔해가 수축하면 강한 중력장이 형성되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실제 우주에 존재하는 블랙홀이다.

 

² 블랙홀에 비해 중력이 약한  중성자별은 훨씬 오랫동안 서로를 맴돌다가 합쳐지는 중력파를 그려낸다.

 

Reference

 

[1] Abbott, B. P., et al. (2016). Binary Black Hole Mergers in the First Advanced LIGO Observing Run. Physical Review X, 6(4), 041015. https://doi.org/10.1103/PhysRevX.6.041015

 

[2] Abbott, B. P., et al. (2017). GW170817: Observation of Gravitational Waves from a Binary Neutron Star Inspiral. Physical Review Letters, 119(16), 161101. https://doi.org/10.1103/PhysRevLett.119.161101

 

[3] Abbott, B. P., et al. (2017). Multi-messenger Observations of a Binary Neutron Star Merger. 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848(2), L12. https://doi.org/10.3847/2041-8213/aa91c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