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니치천문대를공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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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 서문・스테이트먼트 바빌로니아 목동들이 수놓은 밤하늘의 별자리는 우주 공간을 2차원 캔버스로 간주할 때 가능했던 시각 기반의 유희로, 우주론이 3차원으로 상승한 순간 고대인의 낭만적 자취로 퇴조하였다. 반면 수없이 많은 신화, 전설, 영웅, 괴물, 이념, 서사 등을 탄생시키던 지구는 황폐한 플랫으로 변모하였고, 만물은 스크린 안으로만 수렴하는 흐릿한 궤적 내지는 표상의 문제를 지난하게 만드는 잔상으로 전락했다. 천공과 대지가 이룬 차원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를테면 현 상황은 인류로 하여금 지궁도地宮圖를 상상해내도록 주문한다. 지궁도는 동시대 미술에서 긴요하게 다루어지는 정치적 사안들에 호응한다. 그것은 현재 미술계가 천착하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에 불쑥 개입할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궁도의 원관념적 짝패인 천궁..
◙ 지궁도에 관한 노트 : 예술이 한 발 앞설 수 있다면 * 본 고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 전에 비치되어 있던 텍스트입니다. 동시대 전시의 의의 ‘플랫’이라는 단어가 표상하는 세계의 골조는 실제 세계와 얼마만큼의 동조율을 지닐까. 2010년대 후반까지 여러 비평가들의 입을 거침없이 오가면서 현 시기 ‘리얼’을 담보할 수 있다는 듯 강조되던 이 낱말 이후가 논의될 수 있을까. 본 전시는 바로 이 ‘플랫’을, 그리고 그 이후를 모색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근래의 많은 전시들의 공약수는 ‘상상’이다. 현재와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도록 지시하는 매개로서의 미술관. 이러한 분기의 원시간적 지시체가 되기 위해서 공간적 은유를 동원한다. 틈새, 경계, 한계, 지평, 간극, 접경, 탈주 등 주체에 앞선 선택이라는 환경에 대응하는 담론적 구성물들은 차이를 생산하기 위해 ..
◙ 혁명을 위한 절대적 지도 제작 The absolute cartographical: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에 관한 노트 누가 믿을 것인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든 시계탑 밑에 서 있던 새로운 여호수아가 마치 시간이 못마땅하기라도 하듯이 시계판에 총을 쏘아 시간을 정지시켰다고 한다. - 발터 벤야민 전시장은 삼양로의 언덕 중턱에 있었다. 주의 깊은 누군가는 (혹은 주의 깊은 누군가만이), 유리 출입문에 붙인 검은 비닐(vinyl) 시트가 눈높이에서 원형으로 도려내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었다. 문을 열면 어두운 방 안에 앉아있던 가드이자 안내자이며 [내가 방문한 날엔 그랬는데] 전시를 기획한 이가 전시 서문과 작품 배치도를 건네줬다. 그가 전시에 관해 이야기했고 바깥 풍경이 입구의 ‘구멍’에 맺힌 시간으로 수렴되어 그의 우측 벽에 투영되었다. 좌측에는 ‘위장막’(camouflage)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위장막을 들추자 전..
◙ 구멍 난 스크린 위로 전초기지를 세우며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로 들어가는 문에는 폭탄이라도 한 발 맞은 것만 같은 동그란 구멍이 하나 뚫려있다. 일종의 전시 해설에 해당할 에서는 “스크린은 어떤 경우에도 파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폭격의 대상이 스크린이기는 할 것이다. 오늘날 스크린은 ‘플랫’과 함께 세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는 그러한 스크린에 구멍을 내고는, 안과 밖을 부단히 오가며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선제타격이 이루어진 장소에 깃발을 꽂고 전략적 요충지를 자처하고 있는 이 전시는 이들이 설정한 새로운 ‘영점’에 또 다른 예술적 실천들이 연달아 참전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스크린이라는 검은 신체는 단순한 중립지대에 불과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