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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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무빙 이미지, 그리고 영화의 종언: 콩종크튀르(conjoncture)로서의 포스트모던을 넘어[1] “힘도, 의미도 없는 허수아비 로고스에 대한 해체는 멈춰도 좋다. 로고스는 한낱 자본의 화신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가장 실질적이고도 위협적인 해체의 실천은 마르크스주의이다.” 1. ‘무빙 이미지’라는 동어반복 어느 순간부터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라는 개념이 동시대 미술장에 편재하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내로라하는 큐레이터들의 서문에서, 작가들의 스테이트먼트에서, 비평가들의 작업에서- 문제의 무빙 이미지가 심심찮게 등장했던 장면들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빙 이미지’의 인플레이션에 관해서는 다음의 사례들을 톺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2004년 발족한 ‘무빙이미지포럼’, 2006년 아트선재에서 열린 ‘제1회 국제디지털무빙이미지 페스티벌’, 2008년 인사미술..
무빙/리빙 이미지로서의 VR에 관한 연속적 질문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라는 개념은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 직관적이고도 (여전히) 모호하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완벽한 재현보다는 사막에 버려져 동물이 서식하는 누더기 지도에 가깝다”는 말과 같이,[1] 그의 유형학은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동시에 무한히 팽창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탄생하게 된 여러 매체와 장르, 그리고 그들 사이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 포스트-미디어적 순간들을 복기하는 대신, 우선 용어 자체의 사전적 의미를 들여다보자. - 움직이는, 이미지. 두 개의 단어 사이에 명백히 내재되어 있는 ‘동적’인 성질은 아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 움직이는 이미지는 살아 있는 이미지(Living Image)인가? 물론 이미지가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은 아니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