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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미치는 영향력 미술계는 본래가 주기적이고, 각 주기는 대략 『아트포럼』 편집장의 임기 기간 동안 지속된다―잉그리드 시시 (1980-’88), 잭 밴코우스키 (1992-2003), 팀 그리핀 (2003-’10). 하지만 특정 양식의 유행과 개념적 담론들의 성쇠와는 별개로 ‘미술’(그러니까 현대 미술, ‘미술계’ 미술, 비엔날레에 전시되고, 주요 미술관들의 전시 공간과 어쩌면 나중에는 유통 시장 딜러들의 수장고를 채우는 미술)이라는 전면적인 문화 현상은 근대 문화계의 검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다소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술은 역사적으로 전위 운동들이 사회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취한 형식이었다. 억압적인 통념들이 해체되고 이중 잣대들이 비판되던 무대였으며, 한스 하케의 작업부터 해나 블랙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구조적 불평..
선전 이후의 선전물들: 이대 시위에서 MC무현, 그리고 성재기까지 탈정치? 미적 정치의 재출현 2016년, 이대 시위라고 이름 붙여진 독특한 정치적 사건이 출현한다. 이 낯선 정치적 사건에선 과거의 시위나 운동을 표상하던 전형적 형식인 민중가요나 저항가가 울려 퍼지는 대신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대중가요가 불려졌다. 그리고 시위의 주최측은 ‘운동권 총학의 참여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집단 행위가 ‘정치색을 띤 어떤 외부세력과도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들은 이 사건이 흔히 생각하는 정치라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노골적인 탈정치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 선언처럼 그들의 운동은 정치적이라기보단 어떤 정서적, 정동적인 활동에 가깝게 보이기도 했다. 학내의 비민주적인 의결구조에 저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이대 시위는 우연찮게도 최순실 사태의 흐름을 타고 전국민적인 촛불시..
폭★8의 시학, 심영물 심영물만큼 오랜 수명을 지닌 밈은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에 생겨나 이제는 밈의 대명사라고 불릴 정도니까. 심영물은 〈야인시대〉의 64화 속 고자라고 진단을 받은 심영이 내가 고자라니!라고 외치는 장면을 절취한 것이다. DC합필갤에서 시작한 이 밈은 그때 유행했던 싱하형, 빠삐놈 등 당시 여러 밈들과는 다르게 혼자 생존해 유튜브에 살아남아 있다. 심영이 밈으로 처음 쓰일 때는 “내가 고자라니”라고 외치는 장면만 소스로 쓰인 데 비해, 지금은 야인시대 전체가 소스로 쓰이며 야인시대가 심영 이미지를 중심으로 합성되는 양상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 이미지에 그친 싱하형, 덧붙일 만한 서사가 없던 빠삐놈 등 합성요소는 금방 한계에 부딪혔고, 심영물은 사진에서 시작해 영상으로 진화한 밈이 되었다. 이것만으..
<오징어 게임>: 게임의 수용소에 갇힌 시민들과 밈적 이미지의 존재론에 대하여 을 부정적으로 보는 평자들은 보통 작품의 선정적 수위, 빈곤층에 대한 묘사, 그 외에도 개별적인 배역에 대한 묘사의 적절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한 지적들은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드라마의 더 본질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앞서 언급한 평자들의 비판에 대해 지금까지 제출된 반론들을 떠올려보도록 하자. 의 묘사와 선정성에 대한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드라마가 그저 게임 같은 드라마일 뿐이니 진지하게 굴 필요가 없다는 식의 논조를 취한다. 이들의 진지하지 못한 태도가 문제적이라고 생각되는가?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진지하지 못한 이들에게 지금부터라도 억지로 진지해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