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은 해석의 문제

 

 

  종교, 사변, 환각, 임사체험. 어느 것을 통하더라도 산 자는 사후를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산 자에게 죽음은 해석의 문제다. 해석은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산 자는 죽음의 현시와 그 개념을 어떻게 순화하고 받아들일지를 발명해야만 했다. 이러한 노력은 원시인류에서부터 지역을 불문하고 확인되었으며, 내세관과 장례의 긴밀한 결속은 정신문화의 주된 부분이 되었다.

 

  개체의 생물학적 삶이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면 그는 ‘살았고, 죽었다.’는 진술 외에 별다른 말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자연에서 관찰되는 동물의 삶이기도 하다. 문명에서의 삶과 죽음은 동물과 다르게 방대한 의미를 형성한다. 이는 사회의 규모가 제아무리 비대해진다 해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논리로, 산수로 환원되지 않는 여백이 질서 속에 잔류함을 암시한다. 때문에 하나의 블록이 전체를 무너뜨리듯, 한 개인의 죽음이 공동체의 트라우마가 되곤 한다. 이 경우 죽음은 거대한 공백이기에 공동체를 일순간 해체시켜 버린다. 따라서 죽음을 완충하고 수습할 의례가 요청된다. 이제 산 자의 의무는 죽은 자를 사자의 세계로 배웅함으로써 공동체를 재통합하는 것이다.

 

  장례는 충격이 한꺼번에 들이닥치지 않도록, 나아가 충격을 이겨내도록 죽음을 길들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산 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의례의 방기는 치명적인 보복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관계가 일종의 내러티브에 속함을 보여준다. 이 기간을 완수하지 못하면 시간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멈춘다면 그에겐 상실, 애도, 극복과 상속 일체가 무한히 지연된다. 실종자를 찾는 가족의 하염없는 노력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연유한다. 시간. 사라진 이의 신원을 확정짓는 그 순간까지 시간은 얼어붙는다.(죽은 채로 돌아온 이를 마주한 유가족이 느끼곤 하는 한켠의 해방감은 다시금 기지개를 켠 시간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해동을 위해 투하되는 모든 노력은 자체적으로 종결 처리할 수 없는 내러티브의 위기에서 비롯된다.

 

  한편, 이러한 중지는 죽은 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부과된다. 장례를 통해 ‘좋은 죽음’으로 완결을 맞지 못한 그는 죽은 자라기엔 살아 움직이며, 산 자라기엔 한 번 죽었기 때문에 기이한 시공에 배치된다. 반 제넵은 이를 ‘리미널 기간(liminal period)’[1]이라 정의한다. 티벳의 바르도[2]가 순환적인 공간이라면, 리미널 스페이스는 이도저도 아닌 이중부정의 공간이다. 장례는 산 자의 의무지만 죽은 자의 의무기도 하다. 그는 생전에 알고 지내던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자신의 죽음을 공언하고 은원을 정리해야만 한다.(그렇지 않으면 그가 여전히 살고 있는 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으며, 그로 인한 혼란이 얼마나 막대하겠는가?) 부처가 모든 번뇌를 끊어내야 비로소 부처가 될 수 있듯, 죽은 자도 장례를 통해 생전의 관계를 정돈해야 막힘없이 이승을 떠날 수 있다.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뼈는 물자체가 되지 못하고 미심쩍은 것이 된다. 증거물인 동시에 배회하는 유령으로. 안식에 이르지 못한 죽음은 자연히 비참하다.

 

  지난 세기는 비참한 죽음을 미증유의 폭력으로 생산해 왔다. 책임의 정치로 재편된 세계에서 죽은 이는 생애를 막론하고 위령되어야 하나, 뼈는 계급화되어 정치적으로 악용된다. 이 경우 이념은 죽은 자마저 지배한다. 저편엔 전사한 시체가, 이편엔 무고하게 학살된 민간인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으며, 후자는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채 곳곳에 방치되어 있다. 저편에선 전장의 묻힌 국군의 유해를 발굴하고 무명용사의 묘를 마련한다. 그들의 지위는 호국영령으로 치솟으며 국가적 제의를 통해 기려진다. 공적 공간에서 뼈는 사회적 기억으로 전환된다. 이 경우 뼈는 망자가 풍기는 부정성에도 불구하고 성스러운 것, ‘성스러운 비참’을 획득해 최상의 명예를 누린다.

 

  반면에 민간의 학살은 4.19혁명을 기점으로 그 유해 발굴이 추진되었으나 유신 군부에 의해 억압되었으며, 전두환 정권에선 묘비와 유해의 훼손을 경험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 수립된 진실화해위원회가 유해 발굴과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여전히 많은 유해들이 살해당한 장소에 파묻혀 ‘억울한 죽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들은 단순한 분골에 지나지 않는다. 이 뼈는 반성과 책임의 정치가 발원한 이후에도 국가가 애써 망각하고자 하는 역사의 억압된 기억이다. 빙빙 돌아 이제 오래된 물음의 결론으로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왜 뼈를 추리려고 할까? 대답은 둘. 가깝게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시간을 해방시키기 위함이고, 크게는 뼈에 새겨진 기억을 공식화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해내기 위함이다.[3] 그렇기에 묻혀 있는 뼈는 물질화된 기억이자, 귀환을 기다리는 역사 그 자체다.

 

  일반적으로 유해가 출토되면 ①진상조사 ②유가족 배상 ③가해자 처벌 ④유해 안장 ⑤추모공원 조성 ⑥위령사업 수행 등의 절차가 수행되어야 한다. 이는 명시적으로 과거사 청산이지만 실제로는 초시간적인 행위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사회정의를 실현할 역량이 있는지 묻고 있단 점에서 현재적이며, 어떤 기억을 상속하고 지속할지 선택함에 따라 완연히 다른 미래가 열리기 때문이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무르며 경외감과 숙연함을 주는 뼈의 보수성을 건드리는 일은 분명 야만적인 행동이다.[4] 그러나 방치되고 있는 유해를 재매장하고 기념하기 위해 이동시키는 일, 나아가 상징 수준에서 뼈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일련의 활동은... 아마도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공포체험 스팟으로 전락해 버린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의 주변을 배회함으로써 유골의 역사적 출몰에 함께한다. 유령들은 항상 자신의 존재를 알아챌 존재를 찾아 헤맨다. “내가 보여?” 그들을 볼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의 존재론적 밀도는 유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김재민이는, 다크-다크투어리스트는, 정강산은, 최황은 부름을 받아 광산을 배회하고 뼈를, 기억을 길어 올린다. 텍스트는 상징 수준에서의 출토 작업이 되어 갖가지 골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정신은 뼈이다. 기억, 역사, 억압, 귀환, 비참함, 증거, 텍스트 등의 정신적 표상들이 비변증법적인 뼈의 현존으로 나타나기에.

 

  이제 우리 입을 빌어 말하는 유령들의 증언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1] 『The Rites of Passage』, Arnold van Gennep,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1.

[2] 불교에서 사유(死有)에서 생유(生有)로 이어지는 중간적 존재인 중유(中有, antarabhāva)를 말한다.

[3]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노영석, 산지니, 2018, 36p.

[4] Ibid. 부분인용.